한국일보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2018-02-12 (월)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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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자유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인가? 한국에서 때 아닌 국가 정체성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5일 교육과정평가원이 중학교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기준안을 공개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선호하는 보수진영은 ‘자유’라는 말을 삭제하는 것이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고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시도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표현을 선호하는 진보 진영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유신헌법에서 처음 도입된 반공주의의 잔재라면서, 자유보다는 평등을 위한 민주주의적 경제개혁이 더 본래적이고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쟁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까닭은, 진보나 보수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치 정부가 자유주의라는 이념의 구체적 가치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뜻인 양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결코 무제한적 경제적 자유나 반공주의 같은 특정한 이념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말하는 자유에는 사실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여기서의 자유는 국가가 임의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권력행사의 한계지점을 가리킬 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이 보장되며, 여러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경쟁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는 헌법과 법치주의의 틀 아래에서 통치할 것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틀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 참여자들에게 정당한 절차와 규칙을 따르라고 요구할 뿐, 어떠한 구체적인 이념도 편들어주지 않는다.

진보 진영이 말하는 시장경제의 민주화나 소득재분배, 보수 진영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의 확대나 규제완화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범위 안에서 소화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소득재분배와 경기회복을 추구했던 1930년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실험에서부터, 시장에 대한 규제철폐를 통해 경제적 자유와 경쟁을 촉진하려 했던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시도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틀 아래서 이루어졌다.

자유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한, 그 법과 정책의 이념적 배경이나 구체적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봐도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주의에서 온건한 형태의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세력들의 정치참여를 허용해왔다.

극우적 반이민정책을 표방했던 도널드 트럼프나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버니 샌더스나 동시에 대통령직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한국의 국가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둘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늘날 정치학에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말과 혼용되어 쓰이며, 여기서 말하는 서구의 범위에는 영미식 경쟁 자유주의 국가는 물론 북유럽식 복지국가까지도 포함된다.

한국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가치들이 진보나 보수의 이념 중 어느 한쪽 편을 들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 정체성은 구성원들의 정치활동이 가능하기 위한 틀일뿐이고, 그것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헌법의 규정은 정치적 논란에 대한 구체적 해답이 아니라 그저 출발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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