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역이라는 죄

2018-02-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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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TV를 보면 김정은이 현지 지도를 하거나 연설을 할 때 북한 주민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냥 박수만 치는 것이 아니라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무리 절대 권력자 앞이라지만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죽기 살기로 박수를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밝혀졌다. 2013년 12월 9일 북한의 2인자이던 장성택은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의 중 체포돼 4일 만에 국가 안전보위부 특별 군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즉시 처형됐다.

그가 처형된 명목상 이유는 분파 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위험천만한 반당 반혁명 종파 행위를 했다는 것인데 실제는 김정은 정권의 존재를 위협하는 실세로 떠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 중앙통신이 밝힌 특별 군사 재판 전문 내용을 보면 그의 죄상은 10가지인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첫 번째 죄다. 죄목 1항을 보면 “장성택은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시기에 계승 문제를 비아냥대며 음양으로 방해했다. 구체적으로 조선 로동당 제3차 대표자 대회에서 김정은이 조선 로동당 중앙 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결정되자 건성건성 박수를 치며 오만불손한 행동을 했다”고 적혀 있다. 한 마디로 김정은 앞에서 열렬히 박수를 치지 않은 것이 그가 목숨을 잃은 첫 번째 이유가 된 것이다.

북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던 박수 사건이 미국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5일 오하이오의 한 공장을 방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국정 연설을 할 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우리는 그것을 반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왜 아니겠는가. 그들은 우리나라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며 “좋은 뉴스가 나와도 그들은 죽은 것처럼 있었고 비미국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반역적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설할 때 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반역자”라고 부른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야당의원들이 반역자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 같은 인간이 반역죄로 정적을 잡아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 헌법은 반역죄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 헌법은 3조 3항에서 “연방 정부에 대한 반역은 오로지 정부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거나 적에게 원조나 편의를 제공했을 때만 성립한다.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에 관한 2명의 증언이 있거나 공개 법정에서 본인의 자백이 있지 않는 한 누구도 반역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로지’라는 단어를 써 정부를 상대로 무기를 들거나 그런 적에게 도움을 줄 경우에만 반역이고 그 때도 2명의 증인을 요구한 것은 헌법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를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 문제가 정치 이슈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백악관은 “농담으로 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 발언을 하는 트럼프의 얼굴을 보면 농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유일 수령 독재 체제 하의 북한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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