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날지 못한 종이비행기

2018-02-05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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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한 종이비행기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연극의 3대 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라고 배웠다. 모든 공연예술은 무대,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 그리고 관람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진행되는 한국 가수나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면 안타깝게도 어느 하나가 기대치에서 벗어나거나, 기획사가 이를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 마디로, 좋은 공연 하나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이다.

우선 관객인 나는 예술 문화 분야 사람이 아니므로, 한국 공연을 미국으로 가져오는데 어떤 현실적 제약과 어려움이 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하니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거나 시간이 흘러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는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콘서트, 뮤지컬, 음악회 등에 참석하는 일은 일상의 고단함을 지우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회성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 슬플 때가 있다.

요즘은 고국의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K-팝 스타들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지고,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열망도 커짐에 따라 한국 가수나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이 많아지고 있다. 링컨, 케네디 센터에서 듣고 보는 오케스트라나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도 좋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사랑한 한국 가수의 콘서트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공연을 앞둔 이 가수는 지난 28년간 지속적으로 무대 공연을 하며 무대, 배우,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국에 잠시 귀국할 때마다 그의 공연이 있으면 가족과 친구를 동원하여 광기어린 클릭 질을 통해 어렵사리 표를 구해 가곤 했는데, 그 돈과 노력과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공연들이었다. 특히 오랜 시간 호흡을 같이 해온 관객들이 함께 만들고, 뛰어 놀고, 필요하면 정리까지 함께 하고 나오는 그 문화는 가히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한국 공연 문화였다.

이런 공연을 미국에서 재현하기 위해 매번 한국에서는 받아서 사용하기만 하던 이벤트 용품인 종이비행기와 휴지 폭탄을(특정 노래 특정 구간에서 모든 관객이 함께 사용하면, 극적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벤트이다. 비행기와 휴지를 관객 각자 수거해서 들고 나오는 건 기본이다) 직접 만들기로 했다. 관객 수대로 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다들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종이비행기를 접고 휴지를 말았더랬다.

하지만 이곳 기획사가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멋진 공연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던 관객들에게 추가 비용을 내야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다고 접근해 왔다. 10대들 같았으면, 모두 나누면 얼마 되지도 않을 추가 비용 내고 “우리 오빠” 위한답시고 미끼를 덥석 물었겠지만, 우리는 상식이 무엇인지 아는, 불합리한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은 관객들이었다. 따라서 비행기는 날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공연 4일전, 이곳 기획사는 가수 측과도 협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종이비행기 이벤트를 이제는 해도 된다며 관객들을 갈팡질팡 하게 만들었다.

미국 현지 기획사가 자신들이 유치하는 공연과 공연가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일처리는 미숙하면서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오락가락 원칙을 뒤집는 방식에 모두 실망을 금치 못했고, 결국 비행기는 날지 못했다. 미주 한인사회 공연 기획사들이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아직 멀고 멀었음을 깨닫는 계기였다. 한국 공연 문화라는 비행기는 언제쯤 미국에서 훨훨 날 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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