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정연설 이야기

2018-01-3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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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헌법은 2조 3항에 “대통령은 때때로 연방 의회에 합중국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가 보기에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매년 1월 연방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현 미국의 상황에 대한 연설을 하고 이것을 라디오와 TV로 전국에 생중계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꼭 그랬던 것은 아니다. 1790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연방 상하원 합동 회의장에서 국정연설을 한 이후 처음 100년 동안은 서면으로 보고하는 게 원칙이었다.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워싱턴의 국정연설 관행을 중단시켰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영국 왕이 의회를 상대로 하던 ‘왕좌에서의 연설’을 연상시켜 미국 민주주의 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1913년 우드로 윌슨이 자신의 개혁 입법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의회를 찾아 연설을 하면서 이것이 새로운 관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29년 취임하자마자 대공황을 맞은 허버트 후버는 그 충격 때문인지 한 번도 국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윌슨이 국정연설을 다시 시작한 이후에도 의회에 나가지 않고 서면으로 보고서를 제출한 대통령도 있다. 1981년 연설을 서면으로 대치한 지미 카터가 그다.


연설의 이름도 원래는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연례 메시지’였는데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때부터 ‘국정연설’ (State of the Union Address)로 바뀌었다. 1934년 이전에는 연설 시기가 12월이었으나 1933년 수정 헌법 20조가 통과되며 의회 개원시기가 3월에서 1월로 앞당겨지면서 국정연설도 1월이나 2월에 하게 됐다. 전에는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에도 현직 대통령이 잔여 임기의 마지막 해에 연설을 했으나 1981년 지미 카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처음 의회에 대한 보고 형식이던 국정연설은 라디오와 TV등 대중 매체가 등장하면서 대국민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더 중요성을 갖게 됐다. 1922년 워런 하딩의 연설이 처음 라디오로 전파를 탔고 1923년에는 캘빈 쿨리지의 연설이 전국적으로 방송됐다. 처음 TV로 중계된 것은 1947년 해리 트루먼의 연설이며 저녁 시간에 방송된 첫 연설은 1968년 린든 존슨이 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국정연설이 예정일에서 연기된 것은 한 번뿐이다. 1986년 1월 28일 예정이던 국정연설은 당일 우주 왕복선 챌린저가 폭발하면서 1주일 뒤로 미뤄졌다.

국정연설 현장에는 연방 상하원 의원과 내각, 대법관, 군 수뇌부 등이 모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는 있다. 내각 중 일부는 테러 공격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두 사망하는 것에 대비해 은신처에서 대기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에는 일부 의원들도 모처에서 비상 의회를 준비한다.

사법부는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일부 법관들은 소신에 따라 참석하지 않는다. 얼마 전 작고한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국정연설이 운동 경기 중 “응원 시간”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20년간 불참했다. 30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의 첫 국정연설에는 루스 긴즈버그 판사가 불참했다. 트럼프를 “가짜”라고 부른 긴즈버그는 그 시간을 로드 아일랜드 로저 윌리엄스 대학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며 보냈다. 긴즈버그는 작년에 있던 트럼프의 첫 의회 연설에도 불참했었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대통령과 그런 국정연설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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