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향 가는 길

2018-01-29 (월)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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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새해를 맞고 설을 앞둔 이 때가 되면 고국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다음달 16일, 설은 미국에서 맞는 네 번째 설이다.

설이 가까워지면 한국에서는 선물을 준비하고 설 연휴 휴가 계획을 짜느라 바쁘다. 미국에서는 크게 명절 기분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모여 간단한 상차림에 떡국을 먹곤 한다.

어릴 때 명절은 내게 부산 가는 날이었다. 고향집이 하필이면 제주도 빼고 서울에서 제일 먼 부산이라 항상 고생스러운 귀성길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와 온갖 주전부리를 싸서 조수석에 탄 엄마, 그리고 뒷좌석에 쪼르르 앉은 우리 세 자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에 이리저리 새 길을 내어 서울에서 출발하면 4시간도 안되어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지만 그때는 하루 온종일 걸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속도로는 고향을 찾는 차량들로 꽉 차 있었다.

명절이면 해뜨기 전에 출발해 해지고 난 후 부산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명절에 부산 가는 길은 더디고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에게 부산은 가고 싶은 길이었고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긴 시간 차를 타고 가는 것은 힘들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하니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나의 역할은 DJ였다. 내가 준비한 최신가요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아버지는 졸음을 쫓으시고 우리 세 자매는 차 안을 노래방으로 바꿔놓았다. 테이프가 늘어져 댄스곡이 느려지면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휴게소에 들러 먹던 자장면 한 그릇도 귀성길에 빠질 수 없는 별미였다. 엄마를 졸라 달콤한 호두과자도 한 봉지씩 사곤 했다. 명절 인심 덕분인지 휴게소 아주머니는 봉지가 넘치게 호두과자를 꾹 꾹 담아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밤늦게 도착한 우리를 보며 보름달같이 환히 웃으셨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온다고 달짝지근한 식혜를 만들어 놓으셨다.

평소보다 보일러를 세게 틀어 놓으셨는지 방바닥이 후끈거렸다. 우리는 방바닥보다 더 따뜻한 할머니 옆구리에 파고들어 할머니의 구수한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한국 세시풍속 사전은 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간적 존재이기에 자기 영토를 중요시하며, 자기 영토를 떠날 경우 그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한다. 즉, 귀성은 인간이 공간적 존재임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고향 가는 길의 풍경을 떠올리니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지리적으로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지만 많은 한인들에게 고향은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다. 내게도 그렇다. 올 설에는 멀리 고향에 있는 그리운 이들에게 안부전화를 돌려보아야겠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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