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홍콩 스타일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세대는 중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또 그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배제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신비롭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중국(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나는 중국인이랄까, 중국 스타일에 대한 반감보다는 호감을 가지고 살아온 세대의 한국인 중의 한 명이다.
물론 그것은 중국문화나… 영화 등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에 이민와서, 어쩌면 매우 외로울 수 있었던 그런 낯선 환경에서 차이나타운(등)이 많은 위로를 주기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에 처음와서 베이지역에 동양인들… 특히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고 어떤 동질감이랄까, 솔직히 조금 안심이 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비슷하게 생긴 용모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어에서 먼저 주눅들고 들어가는 미국인들보다는 중국인들이 훨씬 만만해 보였고 또 여차하면 함께 섞여서 나갈 수 있다는 그런 심리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베이지역에 오면 대부분의 동양계 얼굴의 사람들은 중국인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워낙 많은 중국인 인구 때문에 중국인들 조차도 보자마자 중국말로 말을 걸기 일쑤이다.
몇년 전의 일이었다. SF 지역에서도 제 2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우는 클레멘트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어느 미장원에 들르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근처 헌 책방에서 이런저런 책을 고르다가 생각난 김에 머리를 깎으려고 들어간 곳이 중국 미장원이었다. 왠 중년 남자(미용사)가 다가오더니 대뜸 물어왔다.
“홍콩 스타일?”
홍콩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도 괜찮겠냐의 질문이었다. 순간 중국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머리 스타일이 떠올라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오케이’ 했더니 (조금 과장하면) 단 3분만에 머리를 깎아놨는데 그것이 참으로 기이하게도 기차게 잘 깎은 머리였다. 미국와서 한번도 깎아보지 못한, 한 마디로 인물이 달라보이기에 팁을 두둑히 주고 휘파람을 불면서 나왔다. 중국인들은 머리도 쿵푸하듯 깎는다. 몇 달 후 그 때일을 생각하며 다시 그 미장원에 들렀더니 이번에는 웬 아줌마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마구 버려놔서 홍콩 스타일 좋아하다 홍콩간 경우가 있었다.
오래 전에 쟈니 윤이라는 (재미)배우가 주연한 ‘They Call Me Bruce?’ 란 영화가 있었다. 쟈니 윤이란 배우가 그 작품 하나로 스타덤에 오를만큼, 코믹 연기가 호평을 받았는데 꽤 히트한 영화 중에 하나였다. 이소룡이란 배우가 사망한지도 벌써 반 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이소룡이란 이름은 여전히 인기다. 왜 그럴까? 이소룡이 직접 무술을 하고 뛰어난 쿵푸 실력을 바탕으로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소룡 이후 쿵푸 영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연걸(제트 리), 성룡(재키 찬) 등도 그들 스스로 무도를 했다는 점이 공통적이지만 이소룡 이전의 쇼브라더스의 수많은 홍콩 배우들은 대체로 연출을 바탕으로 연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저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고나할까. 이러한 홍콩 영화에 새바람을 불어 넣은 사람이 바로 이소룡이었다.
이소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시기를 홍콩에서 보냈고 홍콩에서 사망했다. 오클랜드에서 잠시 도장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소룡은 어릴 때 부터 아역배우로 활약하며 연기를 꿈꿨던 배우 지망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스크린을 장식할 어떤 드라마의 장면을 위해 무도를 한 셈이었다. 근육질의 바디도 그렇고 그의 연기 스타일도 그렇고 이소룡은 무도인이기에 앞서 배우였다.
아무튼 그의 액션 스타일은 혼을 다한 연기이기도 했는데 그의 독특한 무술(나는 이소룡의 액션을 하나의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그 예술성을 만개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 어떤 분야든 천재는 단명한 것일까?
이민이란 마치 서양부모에게 입양된 동양 아이 같기도 하다. 서구(인)는 차다. 동양인이 동양인끼리 뭉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홍콩 스타일?’ 은 여전히 한국인에겐 (어쩐지) 부정적이기만하다. 특히 베이지역에 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한국적인 것보다는 중국적인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살 수밖에 없게 된다. 홍콩 스타일의 dimsum(만두), porridge(죽) 등을 늘 먹어야 하는 우리들의 기막힌(?) 처지도 그렇지만 사귀는 친구, 이웃도 대체로 중국인인 경우가 많고 2세들의 배우자 조차 이제는 중국인 사위나 중국인 며느리를 맞아야 할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 발버둥쳐도 미국의 한 귀퉁이, 그것도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떡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곳에 사는 한, They Call Me Bruce … 그 ‘홍콩 스타일’ 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헤이 부루스, 닉네임을 부루스라 정하니 미국인들도 좋아한다. 내 이름은 Bruc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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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