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과할 줄 아는 사람

2018-01-08 (월)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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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 줄 아는 사람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내 주변의 미국인들은 사소한 일에도 사과를 잘한다. 교수나 동료 대학원생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마다 새삼 깨닫는 사실이다.

답장이 조금 늦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했을 때도, 상대방의 의견이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급한 용무로 이메일을 보낼 때도 바쁜 시기에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상대방이 자기 말을 오해했을 때조차도 자기 설명이 불충분했을 거라며 사과한다.

이들이 정말로 실수투성이 인생을 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사소한 문제에서 잘잘못을 따지며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과한다. 자기가 먼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혹시라도 불편해할지 모르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사과를 받는 상대방도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대체로 이 사람들은 누군가의 사과를 받으면 ‘전혀 문제없다’거나 ‘괜찮다’고 일일이 답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며 같이 사과를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사과와 용서 주고받기’가 언제나 바람직해 보이는 건 아니다. 인사치레일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지는 상황도 상당히 많다. 때로는 업무용 메일의 절반 이상을 사과로 채워야 해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고 사과하는 문화가 일상화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는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에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로 사과를 해야 할 큰일에 대해서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조심성 있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가다듬는 법은 알고 있을까? 작은 예의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사람들 간의 보다 큰 도리는 잘 지킬 수 있을까?

방학 때 간간이 한국을 들린다. 오랜만에 맡는 고국의 냄새가 반갑다가도, 사과에 인색한 사람들을 마주하면 슬퍼진다. 남의 발을 밟아도, 어깨를 부딪쳐도, 새치기를 해도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 길거리의 시민들에서부터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다들 사과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목이 뻣뻣하다.

사과 못하는 병의 증상은 남자일수록, 나이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이들은 남에게 사과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사과를 받을 가능성은 여자일수록, 나이가 어리고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급격하게 낮아진다. 이들은 엄청난 권력자나 여론의 반발과 마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처럼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드물다보니, 상대방도 용서를 모른다. 사과 받을 권리와 봉변 줄 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일터에 찾아가서 업무 방해하는 걸 사과 받을 사람의 당연한 권리의 행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과도한 보상을 사과의 전제조건으로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잘못을 먼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바보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과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의 갈등은 쉽게 정면대결로 치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싸우는 사람들도 본인이 왜 싸우는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몇몇 사람들만으로 이런 문화를 바꿀 수가 없다. 그저 새해에는 나부터라도 제대로 사과하고, 남의 잘못에 너그러워지자고 다짐할 뿐이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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