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방암과 함께 보낸 지난 가을

2018-01-06 (토) 실비아 김 /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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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를 다시 쓰게 된 것이 몇 달 만이다. 지난 가을 내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유방암 때문이었다.

지난 8월 어느 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만 40세 이후에는 유방암과 자궁암 정기검진을 매년 받는 게 좋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별 생각 없이 방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일상적 대화를 이끌어 가던 의사가 깜짝 놀라며 내 손을 들어 가슴의 멍울을 느끼게 해주었다. 약 5cm나 되는 덩어리를 전혀 못 느꼈느냐며 당장 매모그램과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마지막 유방암 자가진단을 한 게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임신 전에는 분명히 했었는데, 두 번의 출산 후에는 ‘수유도 했는데 유방암 걸릴 일 있겠어?’ 싶은 안일한 마음에 아예 자가진단을 접었었다. 그럼 샤워 후 여유롭게 바디로션을 바르며 가슴 마사지라도 한 적은 언제였나 생각해봤다. 아침 샤워 후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아이들 도시락 챙기고 출근 준비하던 장면만 떠오를 뿐 ‘샤워 후 여유’의 기억은 없었다.


매모그램, 초음파 검사, 조직검사, MRI,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진단이 내려졌다. 이어 암 덩어리가 몇 개인지, 얼마나 큰지,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악성인지, 유전적인 영향은 없는지를 파악해서 어떤 방식으로 수술을 하고 어떻게 치료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꽤 길었다.

유전자 검사결과가 음성이라니 유전도 아니고, 출산과 수유도 했으니 위험인자가 많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내가 왜?’ 라는 의문이 시작되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온라인에서 유방암 환자들의 경험담을 접할수록 ‘나도 림프절 전이가 되었으면 어쩌지?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등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신경이 예민해져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예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기로 했다. 물론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회사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며 일이 많아졌고, 개학과 함께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을 챙겨야 할 일도 많아졌다.

나중에 알게 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유방암 환자 대부분이 진단 후 1개월 이내에 우울장애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나의 경우는 암에 걸렸다고 일상생활을 접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대신 수술 직전까지 최대한 육아와 회사 업무를 계속한 것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데 도움이 된 듯싶다.

수술 전과 반대로 수술 후 12주의 휴직기간에는 완전히 내 몸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혈액주머니를 빼고 몸을 좀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요리와 청소를 도와주는 도우미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즈음 유방암 환자들의 이혼율이 일반 여성에 비해 3배 이상 높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한국의 한 병원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였는데, 암 치료 중에도 육아와 집안일을 계속하며 스스로 간병까지 해야 하는 유방암 환자들은 시댁이나 남편으로부터 심리적/물리적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섭섭함이 커지면서 결국 이혼이나 별거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힘드니 도와 달라’ 부탁하는 걸 질색했지만, 남편이나 지인들이 알아서 도와주길 바라고 기대만큼 도와주지 않는다고 그들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뭐든 혼자 다 하려는 수퍼우먼 콤플렉스를 내려놓고 남편과 지인들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나니 내 회복은 빨라졌고, 도움을 받고 감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더 끈끈해지는 덤도 얻었다.


유방암이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도 높고 비교적 조기 발견하기 쉬운 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의 특성 때문에 환자들은 남에게 병을 알리기조차 꺼려하는 경향이 많다. 아울러 암 치료 경력이 취업이나 이직에 영향을 주거나 경력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쉬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유방암 환자들이 스스로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내 경험에 의하면, 본인들이 작은 교통사고 났던 얘기하듯이 유방암과 싸운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때 그 이야기를 접하는 타인들도 암 환자에 대한 편견 및 불편한 시선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여성들 중 단 한분이라도 유방암 검진을 예약하고, 그 덕분에 유방암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비아 김 /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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