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7년을 보내며

2017-12-30 (토) 문일룡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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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마지막 주말이다. 돌이켜 보면 2017년은 여러가지로 생각할 것을 많이 제공했다.

작년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적잖이 실망했던 나는 올해처럼 CNN을 많이 시청한 적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언론매체 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방송진행자와 초청 해설자들 대부분이 대통령의 언행과 정책 방향에 대해 매일 신랄하게 비판했다.

같은 내용이지만 몇 시간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나는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에는 혹시 조금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기조를 유지해 가을에 있을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해 본다.


지난 11월의 버지니아주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게 쏠린 민심을 확인한 것과 더불어 한 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 하원 제 94지구에서는 아직도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재검표 논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한 유권자의 단 한 표에 버지니아 주하원 전체의 주도권이 바뀔 수 있다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은, 한인 동포사회도 투표를 통해 미 주류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된다.

올해 개인적인 이정표로는 나도 이제 환갑이 되었다는 것이다. 환갑이 되면서 과연 언제 은퇴를 할 것인가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은퇴하는 그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고민해 보았다. 미국에 온지 43년, 변호사 33년, 그리고 겸직 공직생활 22년 이상을 하면서 앞으로 은퇴까지의 남은 기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내야 보람되고 후회가 없을까 숙고해 본다.

그러면서 최근 어떤 한 후배의 은퇴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서부터 잘 알았던 그 후배는 34년간의 교직생활을 막 마쳤다. 그 중 33년은 미국에서 했다. 29년을 근무했던 학교에서 최종수업을 마치자 교장이 교실로 들어오더니 마지막으로 학교를 같이 걸어 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교장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복도에 전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모두가 나와 박수와 포옹으로 은퇴를 축하해 주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 후배는 여러해 전부터 은퇴를 준비해 왔다. 교직 은퇴 후 할 수 있는 것을 숙고 끝에 결정해 찬찬히 준비했다고 했다. 미국 교직생활로 얻은 지식과 경험,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 구사 능력, 그리고 오래 남편의 목회를 도왔던 연륜을 모아 카운슬링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학원에 등록해 공부했고 자격시험에도 합격했다. 물론 필수적인 임상실습도 모두 마쳤다. 이렇게 준비한 모습이 참 보기 좋고 나에게도 자극이 된다.

한 해를 마치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으면서 나의 새해 목표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사실 올해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다가 이루지 못해 나름대로 크게 실망한 것도 있다. 새해에는 일단 그냥 머리를 비우고 맘도 편하게 먹고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되물어 본다.

<문일룡 /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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