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집에서 가진 식사모임에서 스테이크를 굽던 중 느닷없이 화재경보가 울렸다. 복도로 뛰어나간 필자는 급한 마음에 빗자루로 몇차례 경보기를 찔렀다. 뜻밖의 대응에 놀란듯 잠시 멈칫했던 경보기는 이내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방에서 달려온 남편이 빗자루로 경보기를 두들겨팼다. 억센 남성의 힘을 알아챘는지 경보기는 30초 가량 침묵했다. 그러나 기계는 곧 되살아났고 더욱 거세게 우리들의 귀를 공격했다. 경보음은 천정에서 경보기를 끌어내려 배터리를 제거한 다음에야 멈추었다.
그때 손님 중의 한 명이 “화장실 쪽에서 연기가 많이난다”고 알러주었다. 확인해보니 화장실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켜두었던 양초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인생은 이렇듯 시끄러운 신호로 가득차 있다. 물가도 하나의 신호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원하고 그들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이며, 우리가 그 물품을 얼마나 구입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표준학력고사 성적은 아이들이 특정 기술을 완전히 습득했는지 여부를 말해주는 신호다. 이러한 경고들은 필자의 화재경보처럼 대단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신호는 중요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고, 이를 무시하면 화를 입게 된다.
안타깝게도 경고가 시끄럽고 번잡하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들을 무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너네 화장실에 불이 났다”거나 “당신네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인종과 소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라든지 “지나친 규제 때문에 주택을 신축하기 어렵다”는 식의 나쁜 소식을 일러주는 정보일 때에 특히 그렇다. 가장 이상적인 대응은 문제가 악화하기 전에 불을 끄고, 학교의 문제를 바로잡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정치의 경우, 종종 피어오르는 연기를 흩어버린 후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잘 조직된 유권자 단체들을 상대해야 한다. 따라서 기관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경보음이 멈출때까지 해머를 휘둘러 경보기를 부서버린다.
바로 이런 상황이, 특히 교육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하고 있다. 준비와 성취 사이의 불일치를 바로잡는 대신 사람들은 평가기준을 바꾸는 훨씬 간편한 해법을 택한다. 부모들은 표준학력시험에 반대했고, 자녀들이 장애 판정을 받아 추가 시험시간을 적용받도록 했으며, 교사들을 상대로 자녀들의 나쁜 점수를 바꿔달라는 로비를 펼쳤다. 지친 교사들은 성적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저소득층과 소수계 학생들이 부유층이나 백인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뒤처진다는 사실을 은폐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교과과정을 희석시켰고, 영재 프로그램을 축소했으며, 우등반과 매그넷 스쿨 사정기준을 약화시켰다. 대학들은 표준학력시험 요건을 폐지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학생 구성을 한결 수월하게 다양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든 곳은 아니지만 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팬데믹 시절의 학습손실을 확인하거나 바로잡는 것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결과는 UC 샌디에고의 최근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나머지 UC 계열대와 마찬가지로 UC 샌디에고는 2020년부터 표준학력고사 점수를 입학사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2024년 UC 샌디에고는 전적으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수학실력 수준의 보충수업 클래스를 신설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고 2025년에는 전체 신입생의 8% 이상이 이 수업을 필요로 했다.
이들은 수학이 필수인 전공을 선택했지만 숫자를 소숫점 두 자리까지 반올림하거나, 분수를 더하거나 나누거나, 0보다 작은 음수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들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202년 기본적인 수학 능력 재학습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이미 미적분과 통계와 같은 고등수학 과목을 최소한 한 과목 이상 수강했을 뿐 아니라 수학과목의 평균 평점이 3.65였다는 사실이다. 이들 가운데 1/4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한 수학 코스에서 전과목 A를 받았다. 이는 UC 샌디에고를 비롯한 UC 계열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하버드를 포함한 많은 대학의 교수들은 학생들의 표준학력시험 점수를 입학사정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수업받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이 대거 입학한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경보에 대응하는 대신 아예 경보를 꺼버리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만다. 이는 치솟는 임대료와 전기요금 등 여러 다른 문제들을 단지 가격 동결만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정치인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물가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지나치게 엄격한 재생에너지 의무규정이나 지극히 모자라는 천연가스 배송관과 같은 어떤 근본적인 문제들이 공급비용을 밀어올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학생들에게 의례적으로 주어지는 A 학점이 대학생활의 성공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가격 동결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문제 해결은커녕 역효과를 내게 된다. 무작정한 주택 건설, 송전선 신설, 혹은 발전역량 확대가 오히려 이윤을 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뉴욕시장 당선자인 조단 맘다니와 뉴저지의 차기 주지사인 미키 셰릴처럼 당신 역시 공급측면의 개혁을 가격통제와 짝지을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같은 개혁이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정치인들이 주택소유주 혹은 새로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반대하는 환경보호주의자등과 같은 막강한 단체들에 맞서야했기 때문이다.
가격 동결은 이런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더 쉽게 만들지 않는다. 치솟는 가격에 관해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주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성적 인플레이션을 통해 교육의 불공정성을 다루거나 가격동결로 공급 부족을 관리하려는 것은 더 많은 흡연으로 폐암을 치료하려 시도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필요한 극단적인 치료받는 것보다 순간적으로 기분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
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