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송년 음악회

2017-12-22 (금) 12:00:00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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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갔다가 코러스의 화음이 너무 아름다워 그 다음 해 시즌이 다가오자 세일도 하지 않은 티켓을 미리 구매를 했다. 그런데 공연을 가기 직전에 남편과 사소한 일로 다퉈서 도저히 그 기분으로 연말 분위기의 공연을 즐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은 초조했지만 설마 했던 남편은 혼자라도 가겠다며 최후통첩을 한 후 겨울바람 속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 남편은 옆 좌석의 남자가 쿠폰으로 반액 표를 샀다고 자랑을 한 것이 내가 가지 않은 것보다 더 속이 상했다고 했다. 나도 속이 쓰라렸다.

올해는 할인 쿠폰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무료로 메시아 공연을 볼 수 있는 어느 교회의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장 입구에 따라 부르기에 필요한 악보를 빌리려면 인적 사항을 적은 후 아이디를 조그만 상자에 넣어야 했다. 남편은 모르는 이에게 신분증을 맡길 사람이 절대 아니어서 악보를 포기한 채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악보를 들고 있었다. 우리도 빌렸어야 했는데...


성탄절 분위기에 맞게 출연진의 의상과 무대가 화려했다. 축제 분위기처럼 사슴 머리띠를 두른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자는 아이를 방금 깨워서 데리고 온 듯한 엄마와 옷을 한껏 뽐내고 차려입은 가족 사이에 앉았다. 순간 잘못 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기우일 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들도 조용히 코러스와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선율에 스며들었다.

좋은 음악은 어디서 들어도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이 코러스를 조용히 따라 불렀다. 클래식 공연장의 정중하고 기침 한번에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에 비해 자유로웠다. 중간휴식 시간이 되자 출연진들이 우르르 내려와 가족들과 포옹을 하고 올라갔다. 여유로운 모습도 재미있었다.

2부가 시작되자 젊은 소프라노가 무대 앞에 앉아서 점자 악보로 코러스를 시작했다. 앞을 볼 수 없는 그녀는 소프라노 파트에서 앞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와 악보도 없이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em(오, 아름다운 그 발이여)을 청아한 목소리로 흔들림 없이 불렀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가사를 보며 할렐루야를 큰 소리로 불렀다.

송년 음악회는 다음 해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소중한 사람들에게 서로가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는 사랑의 음악회이다. 올해 공연도 멋졌다.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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