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2017-12-16 (토) 김홍식 /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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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가족들이 더욱 생각난다. 얼마 전에 아내의 사촌 가족들과 함께 모였다. 처의 이모들은 1963년 브라질로 이민을 가셨다. 혹독한 초창기 이민사를 겪으신 그 이모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시고 자녀들이 손자, 손녀를 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내의 사촌들과 그들의 자녀들, 이민 3세, 4세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미국, 브라질에서 와서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인사하는 법도 문화에 따라 다르다. 미국에서 온 친척들은 악수를 힘차게 하고, 한국문화가 익숙한 사람들은 점잖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반면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껴안으며 인사를 한다.

만찬을 하기 전에 한국어, 영어와 브라질의 포르투갈어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음식도 여러 종류, 그 중에서도 서서히 익힌 연한 브라질 통돼지구이와 치즈 빵이 아주 맛있었다. 식사 후 서로 인사말과 자기소개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모이면 반가운 일과 즐거운 소식도 많은 반면 어둡고 걱정스런 이야기들도 있게 마련이다. 언제 결혼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 젊은 세대도 있고 가족들로부터 소홀이 여김을 받는 사람도 항상 있게 마련이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 신용을 잃은 친척,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구성원들은 주눅이 들어 표정이 무겁다.

집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있는 <돌아온 탕자> 그림 사본이 걸려있다. 렘브란트가 죽기 2년 전 그린 이 그림은 1766년 러시아로 팔린 뒤 히틀러의 러시아 폭격 당시 4년 동안 소금 광산에 비밀리에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의 유명한 이야기를 토대로 유산을 탕진한 둘째아들을 기다리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한 걸작으로 꼽힌다. 여러 번 커다란 불행을 겪어 절망에 빠져있었던 렘브란트는 자신을 탕자로 묘사해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만이 끝까지 함께한다는 사실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전문가들의 해설을 읽으며 그림을 보면 대가의 안목으로 그림이 보인다.

그림 안에서 모든 시선들이 아버지와 탕자에게로 향해 있다. 황금빛 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아버지의 눈은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짓물러 있다. 그 아버지는 헐벗은 거지 모습의 탕자를 감싸 안고 있다. 조아리고 있는 작은 아들의 헤어진 옷과 신발, 상처 난 발에서 그 삶의 비참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의 핵심은 모든 빛이 모여 있는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온화한 부드러움이 손을 통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이며 아들의 등과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다. 그러나 오른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는다. 아들의 등 위에 부드럽게 얹혀 있으며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아버지의 모습과 서로 다른 두 손에는 화해와 용서,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죄 지은 인간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아들이 방황할 때 몸이 쇠퇴해지면서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우리 몸에도 어렴풋이 담겨져 있다. 예로, 콩팥 조직의 일부분이 기능을 못하게 되면 아직도 기능이 좋은 조직이 일을 많이 하여 몸에 지장이 없도록 신장기능을 계속 유지시켜준다. 한쪽 콩팥이 병에 걸려 쭈그러들면서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 반대쪽 신장은 커지면서 약해진 콩팥의 몫까지 일을 하게 된다.

X-레이를 찍어보면 작아진 쪽과 반대편 커진 신장이 확연히 달라 보이는데, 렘브란트 그림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 혹은 다른 두 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과로한 콩팥 조직도 결국 쇠퇴하게 되어 신장 부전증에 도달하게 된다. 약해진 신체 일부를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져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우리 몸의 조화이다. 가족이란 공동체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성경 아가서에 있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라는 말씀이 이 추운 계절에 마음을 뜨겁게 해주는 성탄메시지로 다가온다. 이 위로의 말을 의기소침해 있는 가족, 이웃들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홍식 /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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