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입양아들의 주치의 조병국.

2017-12-14 (목) 12:00:00 김선원(프리랜서)
크게 작게
대학교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97년 프랑스의 남쪽 엑상 프로방스라는 작은 마을로 간 우리 가족은 프랑스로 갓 입양된 덕림이를 만나게 되었다. 덕림이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9살에 입양됐는데, 1개월이 지나자 한국어를 잃어버리고 발음이 둔해졌지만, 칼칼하고 매운 맛을 좋아하는 입맛은 남아 우리집에 오면 맘껏 ‘김치’를 먹곤 했다.

또한 유독 이민자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했던 성당에서 성인이 된 입양인도 만났다. 그 친구는 너무나 조심스럽게 20년만에 한국인을 처음 만난다면서 고등학생 사춘기 소녀였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프랑스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프랑스 문화와 언어에 푹 빠진 나는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온 프랑스 입양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일도 같이 했었다. 2005년 버클리에 와서는 입양인 모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했다.

이번 한국 방문중 우연히 일산 홀트복지센터에 머물면서 조병국 의사 선생님을 만나뵙게 됐다. 조 선생님은 50년간 입양아동들의 주치의로 일하다가 은퇴하신 지 8년이 되었다. 그때 쓰셨던 회고록이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로 2009년 나왔다. 봉건주의의 그늘, 친자주의,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한국, 전쟁의 상처와 가난 아래 버려진 고아들의 사연들에 눈시울을 적셨다.


조병국 선생님은 평생 일해온 기관에 대한 편향적인 시선으로 십년간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는 고백도 했다. 마치 홀트재단이 아이들을 해외로 ‘수출’해 돈벌이에만 정신없었다는 비판을 받을 때는 ‘벙어리 냉가슴’이었다고 했다.

40만 입양인이 현재까지 해외로 입양돼 그곳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해외로 입양돼 성공한 한인입양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까지 성공한 입양인은 참으로 많다. 지구촌 인구의 거의 10% 이상이 다양한 종류의 입양에 관련됐다는 통계도 있다.

피를 받은 부모에게 한번 버려졌다고 해서 그 인생 자체가 버려진 것은 아니다.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삶에 대해 좀 더 관대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번의 대단한 실패, 한번의 대단한 비운으로 꺾어질 수 없는 것이 삶이기에 살아볼 만하다는 진리가 조 선생님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얘기같다. 많은 귀한 생명을 보살펴주신 조병국 선생님께 고개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다.

<김선원(프리랜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