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적 시장경제

2017-12-08 (금) 12:00:00 이형국 정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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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시장경제

이형국 정치 철학자

세계화 경제 속에 명쾌하게 정의되는 경제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미의 자유시장 경제 모델,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모델, 네덜란드의 폴더모델, 독일의 사회시장경제 모델 등이 이에 속한다. 한때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세계 금융위기와 유로화 위기 속에서 그들의 ‘사회 시장경제’는 안정적이고 우수한 모델로서 재조명되기 시작하고 있다.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며 재분배를 목적으로 한 이 경제체제는 자유주의적 특징보다는 오히려 사회민주적이면서 케인즈주의 경제학적인 특징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독일의 이러한 자본주의의 형태는 영미권의 ‘주주’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와 대응된 개념으로 간주된다. 영미식 자유시장경제는 현재로서는 그 한계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풍부한 인적자산과 혁신적인 기술이 원동력이 되어 계속해서 세계경제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미국은 1776년 독립국가로 선포한 후 지금까지 줄곧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한 자긍심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세계패권 지위를 지켜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의 정책과 시스템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점이 분명히 있다. 자유지상주의와 자유방임주의 이념만 고집하다 썩어가고 있는 사회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은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처럼 역사 뒤편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독일은 20세기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반세기 짧은 기간 동안 그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참담하고 불행한 역사적 큰 굴곡을 겪어왔다. 그리고 뼈를 깎는 고통의 심정으로 역사적 단죄와 청산을 하고, 과거로부터 시행착오 과정을 거듭하면서 좋은 정책과 시스템을 사회 전반에 결쳐 구축하였다.

독일 내 기업 300만 개 중 대기업은 1%도 되지 않는다. 99%는 500명 이하의 근로자를 거느린 중소기업이다. 자본과 기술을 중심으로 노사가 같이 경영에 참가하여 투명성과 공정성을 만들어가는 ‘공동의사 결정제도’ 기업문화는 주주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한 좋은 사례이다. 이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합의에 의한 적절한 이윤분배 문화, 그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권인 최저생활, 교육, 의료를 보장하는 복지문화도 좋은 사례이다.

1991년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붕괴되었고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자유시장 경제 또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시장경제에 따른 자유경쟁을 지향하면서, 사회적 질서의 형성 및 유지에 있어서는 시장의 ‘사적인 힘’이 아닌 국가의 ‘공적인 힘’이 공동의 선을 위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독일 철학자 발터 오이켄의 ‘사회시장경제’가 그 대안이란 게 세계 석학들의 정평이다.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수준의 고용율과 더 평등한 사회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시하고 눈을 감았다. 불안전한 고용으로 인한 실업, 빈부격차로 인한 불평등, 성장위주 탐욕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로 가득한 세상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경제정책은 개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행복과 불행의 결과를 결정한다. 한국이나 미국에 있어서 불평등은 공적인 힘이 사적인 힘에 굴복하면서 생긴 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형국 정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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