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의 바다] 어느 여행지에서

2017-12-04 (월) 12:00:00 어수자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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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저편 잿빛 하늘, 산과 호수가 온통 잿빛으로 한데 뭉뚱그려져 스믈거리며 다가오는 어둠에 우울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빗물은 건물들 지붕 위에서 번들거리고 네온싸인의 붉고 푸른 빛이 거리에 흐르기 시작한다. 건물의 창마다 노란 불빛이 하나 둘씩 별처럼 비에 젖은 어둠을 밝히고 가로등불 아래 빗물이 모여들듯하다간 산산히 부서져 흩어진다.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은 기대한 사람보다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 자신에게 더욱 절망스럽게 다가오는 것인가. 작품도 하지않고 글도 쓰지않고 도대체 뭐하는거냐는 전화 속 단 한마디의 질책이 송곳처럼 가슴을 후벼판다. 아프다. 금새 절망 가득한 아픔이 전신에 퍼진다.

어찌하랴. 이 벽을… . 나아갈수 없는 벽… .


경쟁, 질시, 그런 따위들과 자만과 교만, 지긋지긋한 실패와 끊임없는 좌절,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감, 그것들로부터의 도망과 은둔의 오랜 세월 뒤에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버린 바에야… .

결벽증같은 작품에 대한 나의 태도 또한 고칠수 없는 고질병같은 것이어서 내가 스스로 감동받지 않고서는 아무한테도 감동을 줄수 없다는 고집을 꺾을 도리가 없고, 철저한 테크닉의 배제, 혹은 너무나 완벽해서 완전히 한 몸이 되어버린 테크닉에의 추구,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내 것에 대한 더욱 커져만가는 실망감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함부로 뱉어내는 글과 작품들에 대한 불만족으로 시달리는 일 또한 버겁다.

기대와 칭찬, 격려에 대한 열망과 이율배반적으로 그것들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더욱 큰 열망 사이에서 늘 흔들린다. 가장 단순한 삶의 추구안에서 시시때때로 치고 올라오는 복잡다단한 생각들, 욕심들과, 버려도 되는, 그러나 버리지 못하는 자잘구레한 일상들, 사물들에 매여있다. 그 우유부단함과 내가 쓰고있는 교묘한 가식과 위선의 가면에 스스로 흠칫흠칫 놀라고 실망한다.

실로 내가 진정 나일수는 없는걸까. 남이 만들어 놓은 나와 내가 아는 나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또한 운명이란 거대한 수레바퀴에 갇혀 돌아갈수 밖에 없다는 것은 굴복인가 받아들임인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거라는 야심만만한 소위 성공한 자들의 말에 의하자면 나는 그저 패배자의 변을 주절거리고있는 것일까. 그저 신의 손 안이니 어쩔수 없음을 내세우며 고통없는 평안에 안주하려는 것인가. 내가 무시해온 저급한 생각들이라 믿어온 것들이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모든 것에 대한 회의로 무섭게 소용돌이 치는 가슴으로는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나는 단지 나이고싶을 뿐이다.

밤새 절망감 속에 뒤척이다 커튼 사이로 들이비치는 햇살에 커튼을 열어젖힌다. 간밤의 비가 영하의 온도로 눈이 되어 왔었나보다. 건물들 지붕과 자동차들 위에 하얗게 내려 앉아있다. 너른 짙푸른 호수와 호숫가를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푸른 산들, 가까이 침엽수림과 그 사이 평원이 한가롭다. 하늘은 다시 푸르르고 뭉개구름 몇 조각 떠있다. 이 모든 것이 한 눈에 저 멀리 내 발 아래 펼쳐져있는데 나는 밤 내내 무엇에 시달렸던가.
그렇다. 나는 내가 진정 나이고싶은 그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 그저 저 산들과 호수처럼, 저 나무들처럼 다만 있는 것, 거기 그냥 있다는 것, 단지 그것밖에는.

그러니 움직이자. 어디론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아가자. 어제의 잿빛 하늘과 호수가 오늘은 저리 푸르고 또 내일은 내일의 빛을 띄울 것이다. 그래도 호수는 호수이고 하늘은 하늘이 아니던가.

<어수자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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