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삶의 의미

2017-12-02 (토) 12:00:00 장선효(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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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행복”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행복하다고 말을 하는 동시에 ‘내가 정말로 행복한 건가?’라는 질문이 나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그 의구심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생각에 잠길 때면, 기뻐하던 나의 감정은 어느 순간 공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이 단어가 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현재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작가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사람들은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그 강박감 속에서 이상적인 직업과, 완벽한 남자친구, 아름다운 집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다. 행복이란 단어가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충족이 되어 만족함을 느끼는 상태’라면, 그 누구도 이 단어를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좋은 것에 욕심을 낸다. 어떠한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도 인간은 끝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 할 것이다.

스미스는 사람들의 불행과 절망은 무언가로부터의 결핍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아서 삶이 버거운 것이 아닌 그들이 쫓으려 하는 ‘삶의 의미’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삶에 있는 ‘네개의 기둥’을 설명한다. 사랑으로 서로를 이끌어주는 유대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삶의 목적, 자신의 최대치를 개발하는 초월성, 그리고 3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 이 네개의 기둥은 힘든 삶 속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스미스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응급수술은 받은 적이 있었다. 마취제가 들어갈 때 거꾸로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이름을 반복했다. 가족이라는 유대감 속에서, 아버지라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도 자녀의 이름을 되풀이하는 초월성을 보여줬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스스로 쓴 이야기며 그의 네개의 기둥은 그의 삶의 의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영원하지 않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다가도 손을 뻗으면 금세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행복을 쫓는 삶이 아닌 삶의 의미를 먼저 충족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더 큰 만족을 가져다 줄 것이다.

<장선효(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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