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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재크린의 눈물

2017-12-01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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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재크린의 눈물
요사이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의 사망 30주기를 맞이하여 그녀의 음악과 생애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첼로곡 ‘재크린의 눈물’은 독일의 첼리스트 토마스 W. 미푸네가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을 발견, 재크린의 이름을 붙여 발표한 곡이었는데 현실에서 버림받은 천재의 자화상이랄까… 조금 신파같지만, 그녀의 생애가 얼마나 애절했기에 이런 곡까지 탄생했을까.

세상에서 당하는 인생의 비극은 때때로 할 말을 잊게 만들곤 하지만 Divine적인 어떤 것… 천상의 그 무언가를 영감받기 위해서 인생은 그 얼마나 철저히 세상에서 버림받아야 하는가. 마치 그리스도가 그랬듯, 이 세상의 모습은 어쩌면 비극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비로소 정화되는, 또 하나의 진정한 세계가 펼쳐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클린 뒤프레는 5살 때 첼로학교에 입학,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당대의 대가 파블로 카잘스, 로스트로비치 등에게 인정받으며 그 천재성을 꽃피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단 6년이란 짧은 연주 여행을 마치고 다발성 근육 경화(마비)증으로 침대에 눕고 만다.


1973년, 그녀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었다. 말년과는 달리, 그녀의 삶이 본래적으로 비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풍요로운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혜택을 누렸고, 더욱이 천재성까지 타고나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남편도 그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다니엘 바렘보임이었다. 누가 보아도 미래가 보장된, 스타 부부의 출발이요 스타부부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야망으로 점철된 바람 보이(?) 바렘보임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데 있었다.

그를 남편으로 선정한 정도가 아니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태교로 개종까지 하면서 유태家로 시집가지 못해 안달했다. 바렘보임은 꾀많은 유태인답게 인기절정이었던 그녀를 연주회마다 끌고다니며 그의 출세에 충분 이용했고, 무리한 스케줄 조정으로 그녀를 윽박질렀다. 체력의 한계 속에서도 남편을 위해 무리하게 첼로를 켜가던 그녀는 결국 병상에 눕게 되지만 바렘보임은 이용가치가 사라진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리며 배신의 칼을 등에 꽂았다.

섬모셋 모옴의 ‘달과 육펜스’는 예술을 위해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피폐된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소설이기도 했다. 달은 인간의 理想이요… 예술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육펜스는 예술을 통해 영욕을 누리고자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 하나의 가치를 위해 또하나의 가치를 희생양으로 삼는 예술가의 치졸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뒤프레와 바렘보임의 불행은 인생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알지 못했던, 그들에게서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바렘보임이 그녀가 침상에 누워있을 때 조차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와 애를 둘까지 낳으며 지탄받을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첼로 소리는 연주회에서 종종 줄이 끊어질 만큼 불같은 소리로 감동을 주었지만 그녀는 첼로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으론 바보이기도 했던 그녀는 악보 읽는데도 서툴렀고 언어 감각도 아둔했으며 무언가에 홀린듯 오로지 야생마같은 본능으로 첼로를 켰다고 한다. 약 40여년 전, 방송에서 흘러 나오던 그녀의 첼로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강렬했는데, 그녀의 음악이 좋았던 것은 아마도 그녀의 음악에서 흙에 가까운 향기가 풍겨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그만큼 자연스럽고 본능에 가까웠다. 간결한 떨림, 기교는 거칠었지만 내면의 열정이라고나할까, 어떤 안타까운 향수가 짙게 뭍어났다. 그 후 그녀에 대한 여러 잡다한 이야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나에겐 관심밖의 일이었고 구태여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녀의 연주는 훌륭했고 나는 그저 그녀의 연주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가 사망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의 무지막지한 비극 조차도 오히려 천재 예술로서의, 그 열매인듯 핥고 있었던 나야말로 어쩌면 달과 육펜스… 그 이기적인 모습의 하나가 아니었나하는 회한에 젖기도 한다.

그녀는 눈꺼풀 조차 뜰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마비증세를 보였는데 그나마 기동이 가능했을 때 제자양성에 힘쓰다가 마치 석양이 지듯 (42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땅위에선 불행했지만, 그녀의 넋은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행복할까? 그녀의 첼로 소리를 들으며 고향으로 마구 치닫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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