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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분

2017-12-01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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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 비 홈 마이 달링/플리즈 웨이트 포 미” 하면서 시작되는 ‘아일 비 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팻 분의 노래다. 약간 비음에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조류가 막 왔다간 뒤의 백사장의 감촉과도 같이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분은 83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건강했다. 한창 감수성이 영글어가던 고등학생 때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한 내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깊숙이 들어서 그를 직접 만나(사진) 인터뷰를 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분을 최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만났다.

분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여성 팬들의 열광을 회상했다. “한국을 너 댓 차례 방문해 공연했는데 여성 팬들이 무대에서 자기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다”면서 “그들의 손힘이 매우 세더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1956년에 불러 빅히트한 ‘아일 비 홈’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노래다. 분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님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가 당시 한국전 후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그들 고국의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 연 4년간 넘버 원 신청곡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젊었을 때 정통 올 아메리칸 보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분은 이런 이미지와 로맨틱한 음성 때문에 1950년대 백인 틴에이저들의 우상으로 사랑을 받았고 생애 총 42곡의 탑 40를 기록하면서 수천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분은 이런 단정한 모습과 온순하고 고운 노래들 때문에 당시 골반을 마구 비틀어대며 ‘악마의 노래’인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를 혐오하던 틴에이저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자란 분은 역시 테네시의 멤피스에서 활동한 프레슬리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분은 인터뷰에서도 프레슬리에 대해 자상히 회상하면서 자기가 그보다 탑 40히트곡이 딱 1곡 더 많다고 자랑했다.

분은 나이에 비해 강건할 뿐 아니라 컬럼비아 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사람답게 기억력도 비상했다. 무슨 노래를 몇 년도에 불렀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분은 이 같은 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비결을 “우유를 많아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하며 깨끗한 양심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자기를 “팻”이라고 부르라고 부탁하는 분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또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그래서 첫 대면인데도 구면처럼 친근감이 갔다.

분은 수많은 히트 팝 뿐 아니라 가스펠, 록,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를 비롯해 심지어 헤비 메탈 장르까지 섭렵한 가수다. 그런데 뒤 늦게 시도해 빅히트한 헤비 메탈 앨범을 출반했다가 자기가 출연하던 기독교TV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분은 랩은 음악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건 음악이아니라 리듬에 붙인 폭언”이라고.

분은 이 날 자신의 가수로서의 생애 외에도 지난 63년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셜리와 히트곡 ‘유 라이트 업 마이 라이프’를 부른 딸 데비 및 정치와 신앙 등에 관해서도 길고 상세하게 얘기, 인터뷰는 근 2시간이나 진행됐다.

여러 펀의 영화에도 나온 분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이 자기가 주제가도 부른 ‘에이프릴 러브’(1957)와 빅히트한 공상과학 모험영화 ‘저니 투 더 센터 오브 디 어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에서 공연한 셜리 존스와 키스 한 번 못 했다며 크게 웃었다. 감독 헨리 레빈이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존스의 입에 키스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분은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사절했다는 것이다.

분은 당시 22세였는데 그 때부터 그는 매우 도덕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릴린 몬로와 공연할 영화도 그 내용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 개봉 40주년 회고전 때야 비로소 무대에 함께 나온 존스의 입에 키스를 했는데 “가볍고 아름다운 키스였다”고 회상했다.


분은 자기가 가수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교사나 목사가 될 줄 알았다는 것. 둘 다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직업인데 분은 독실한기독교 신자다.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인 분이 지난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마지못해 지원한” 까닭도 트럼프가 새로운 기독교신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분은 트럼프 지지운동을 해 트럼프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분은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감답지 못한 짓이니 상대방을 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분은 이어 “트럼프가 비생산적인 트위팅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를 지지하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분의 많은 노래들 중 내가 즐겨 듣던 노래들은 ‘웬 아이 로스트 마이 베이비’ ‘무디 리버’ ‘프렌들리 퍼수에이전’(영화 ‘우정 있는 설복’ 주제가) ‘러브 레터즈 인 더 샌드’ ‘스피디 곤잘레스’ 및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가. “디스 랜드 이즈 마인”으로 시작되는 ‘엑소더스’의 주제가는 이스라엘의 제2의 국가로 여겨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 2005년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분의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 때 분은 71세로 여전히 스위트한 음성이었다. 세월은 가지만 분의 노래들은 내겐 지금도 청춘의 속삭임으로 남아 있다. 이 할러데이 시즌에 분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 축복 받는 기분이 날 것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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