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DMZ의 가을

2017-11-29 (수)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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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가을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서울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국 갈 때 마다 황사와 매연으로 희뿌연 남산은 숨이 턱턱 막혔다. 검푸른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한 남산 위로 창공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른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올 가을, ‘버클리 문학’ 4호 출판기념회를 대전에서 열었다. 행사 후 난 며칠 더 머물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벼르던 DMZ, 비무장지대 탐방에 나섰다. 외신들은 북한의 핵 도발로 고조된 위기 상황을 연일 쏟아내는데 정작 서울은 이를 비웃기나 하듯 무표정했다. 오히려 극심한 내분으로 태극기와 촛불 무리들이 서로 주적인 양 등을 돌리고 포진하고 있었다.

DMZ 견학을 미국서 미리 신청해 놓은 터라 관광사 버스가 호텔로 픽업을 왔다. 그날 동승자는 60대 캐나다인 부부와 미 동부에서 온 신사, 나까지 넷이었다. 임진강을 끼고 파주로 가는 통일로를 달려 첫 행선지인 임진각에 닿았다. 서울서 불과 30마일. 내 출근길만큼 지척이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을 잇는 ‘자유의 다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포로 교환을 했던 다리다. 벽에 매단 수많은 망향의 리본 중에 한 글이 눈에 띄었다. “다리를 건너는 것은 소리 없이 흘러가는 세월뿐이다.“ 나는 이 구절을 되뇌며 총탄 구멍이 숭숭 뚫린 녹슨 기관차 곁에서 캐나다인 부부 사진을 찍어주었다.

의외로 캐나다인 부인이 눈시울을 붉히고 섰다. 야외 스피커에서 은은히 울리는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촉촉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우린 캐나다로 이주한 마케도니아 사람들입니다. 우리 민족이 한때는 알렉산더대왕의 대 제국을 세웠지만 수세기 동안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부모형제들이 갈갈이 찢어져 세상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분단된 한국인들의 슬픔을 알 것 같아요. 이 노래가 고향 마케도니아의 비가와 음률이 꼭 닮아 절로 눈물이 났어요.”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세상엔 지금도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자유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가? 가족을 찢고 민족을 서로 죽이는 소위 ‘이데올로기’란 인류의 가장 큰 악의 축인지도 모른다.

버스는 남한 최첨단, 도라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국방색으로 위장한 건물 이마에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란 표어가 나붙었다. 그러나 이곳은 분단의 끝이 아니라 분단이 시작된 곳이었다.

근처에 북한군이 파놓은 제 3터널에 들어갔다. 1978년에 발견된 지하 수직 74미터, 길이 1.6킬로의 땅굴. 3만 정규군이 4시간 만에 휴전선 이남으로 침투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들어가 보니 흙 한 톨 없는 화강암반이다. 오직 폭약과 손톱 끝으로 뚫은 셈이었다. 1990년에 발견된 제 4터널은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로 팠으니 공산집단의 ‘통일의 시작’이 얼마나 악착같고 호전적인지 증명한 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민통선 내 장단콩 마을에 들렀다. 실향민들이 허가를 받고 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시장에 들어서니 미국에서 온 신사가 커다란 비닐봉지에 말린 취나물, 콩잎들을 담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은퇴 엔지니어로 한국음식을 유투브로 보고 심취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돌아가면 맛있게 나물 무쳐 소주 한잔 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DMZ까지 찾아온 외국인들 틈에서 가장 무표정한 사람은 우리를 안내하는 젊은 가이드였다. 아이돌 그룹 멤버처럼 차려 입은 그녀는 종일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화장만 매만졌다. 외국인들이 물어도 준비 안 된 영어로 성의 없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나는 핵의 위협에도 아랑곳없는 서울의 무표정을 그녀에게서 보았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의 무관심, 무감동에서 안보에 대한 절실함이나 직업에 대한 프로정신을 보지 못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이 흘렀다. “아 ~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가을 탓인지, 내 나라에 대한 짝사랑 때문인지 마음이 울적했다.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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