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리 없는 킬러’- 외로움

2017-11-25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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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이 지나고 본격적인 할러데이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한달 여 크리스마스와 설날로 이어지는 2017년의 남은 날들은 흥청흥청 들뜬 분위기 속에 시끌벅적하게 지나갈 것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그렇게 함께 삶을 축하하는 크고 작은 모임들이 이어질 것이다.
모든 명절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음식과 사람이다. 명절에 따라 행하는 의식과 의미는 달라도 가족친지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같다. 그런 전통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류조상들의 생활양식이 있을 것이다. 수렵채집으로 연명한 그들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모인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만큼이나 생명유지에 필수적일 수 있다.
연말연시는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의 원초적 필요를 마음껏 충족시키는 계절이다. 그래서 파생되는 것이 할러데이 우울증이다. 저마다 모여서 함께 먹고 마시는 축제의 계절에, 오라는 데 없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진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서 연중 가장 심각한 우울증의 계절이 찾아든다.
‘외로움’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소리 없는 킬러’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공중보건국장이었던 비벡 머피 박사는 미국인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최대의 적으로 외로움을 꼽는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이 미국의 공중보건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로움이 전염병인 이유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고, 한 사람이 외로우면 그 옆에 있는 사람들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24시간 SNS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고독을 느끼는 비율은 1980년대 이후 두 배로 뛰었다. SNS 친구가 아무리 많고, ‘좋아요’를 아무리 받아도 온라인 교제는 속빈 강정 같은 것. 근원적 고독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관련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들 중 40%는 ‘외롭다’.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그는 흡연과 비만에 비교한다. 담배를 하루 15개비씩 피우는 골초 혹은 체중이 100파운드 초과한 뚱보에 버금가게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우리 몸에 비상경보를 울리기 때문이다. ‘혼자다’ 느끼면 우리 몸은 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하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을 마구 분비한다. 코티졸이 만성적으로 분비되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심장질환, 뇌졸중 등의 위험이 높아져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인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에 인간은 홀로 살수 없었다. 사냥으로 먹을 것을 얻고, 맹수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무리를 지어 살며 힘을 모아야 했다. 혹시라도 혼자 동떨어지면 즉각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것이 유전자로 각인돼 우리의 신경시스템을 움직이고 있다.
머피 박사가 외로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공중보건국장으로 전국을 방문하면서였다. 어디를 가나 그 지역 건강문제의 밑바닥에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사실은 많은 연구의 공통적 결론이다. 지난 16일 테드 토크에 출연한 심리학자 수잔 핑커 박사는 장수를 결정하는 데 유전적 요인은 25%, 생활방식이 75%의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장수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주장들과는 거리가 있다.
핑커 박사는 연구를 위해 이탈리아의 작은 섬, 사르디니아 주민들의 생활을 관찰했다. 100세 이상 인구가 이탈리아 전체 평균의 6배, 북미주 평균의 10배가 되는 장수마을이다. 그곳 주민들이 특별히 건강식을 하거나 성격이 낙천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이웃끼리는 물론 우체부와도 상점 주인들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이웃들끼리 툭하면 함께 어울려 밥을 먹는다.
동네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삶, 우리 모두 과거에 살았던 방식이다.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할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다.
테레사 수녀도 생전에 현대사회 최악의 질병으로 고독을 꼽았다. 일례로 어느 양로원에 가니 노인들의 고개가 모두 한쪽으로 돌아가 있더라고 했다. 누군가 찾아올 사람을 기다리느라 노인들이 모두 문 쪽만 바라본 탓이었다.
우리 주변에도 마음의 고개가 문 쪽으로 향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말 걸어주기를, 미소지어주기를 기다리는 외로운 마음들이다. 연말연시에 주위를 돌아보자. 따뜻한 말 한마디, 전화 한통의 관심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녹여줄 수 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 될 수도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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