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숙희의 첫사랑
2017-11-25 (토) 12:00:00
장선효(UC버클리학생)
사랑은 순식간이다. 아무 예고없이 불현듯이 찾아와서 어느 순간 마음에 자리잡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다. 시간을 예고하고 순차적으로 생겨나는 감정도 아니다. 상대가 누가 될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지도 않는다. 단지 소리없이 찾아와서 마음속에 살포시 내려앉아 버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 사랑이다.
때로는 돌연적으로 찾아온 사랑 때문에 혼란이 올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대와의 끌림에 심적인 갈등과 그후에 따르는 댓가를 감당하기도 해야 한다.
강신재 작가의 단편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열여덟 살의 한 소녀와 스물두 살의 한 청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린 두 청년에게 서로가 풋풋한 첫사랑으로 기억에 남기에는 의붓남매라는 비극적인 운명이 이미 그들의 불행한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구절과 함께 시작되는 숙희의 독백은 사랑에 빠진 한 여학생의 순수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후각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녀는 새 오빠 형규에 대한 감정을 숨기고 사이좋은 오누이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혼자만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끝내 희열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숙희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은 단지 어머니와 새 아버지가 만든 새 가정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형규와 자신은 피 한 방물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서 사랑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히 하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그 상대가 의붓오빠라는 점에서 금기의 사랑을 담대하게 지켜나가는 그녀만의 패기 넘치는 성향 또한 소설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어머니를 향한 강한 애착과, 갑자기 생겨버린 아버지, 그리고 의붓오빠에게서 느껴지는 떨리는 감정은 어린 숙희를 한 여인으로 성장시킨다.
사랑은 어렵다. 사랑 그 자체 보다, 서로 맞춰가며 관계를 유지해 나아가는 과정이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 힘든 과정을 헤쳐 나가다 보면 한층 더 성장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아실현만을 추구하던 삶은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그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꿈꾸는 삶으로 성장한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숙희의 어린 사랑을 탓하지 않는다. 고된 첫사랑으로 인해서 변화하는 사춘기 소녀의 순수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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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효(UC버클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