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하는 남동생을 보내며

2017-11-25 (토) 박계영 / UCLA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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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동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집의 외아들이자 가문의 종손이었던 남동생이 지난 시월의 어느 날 하늘나라로 갔다.

동생은 50대 중반으로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아내를 잃은 이후로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았다. 법대 교수였던 동생은 지난 봄 학기 힘들게 학사일정을 마치고 나서야, 병원에 갔다가 암 판정을 받았다. 그 후로 4개월 동안 치열한 투병 생활을 했지만 끝내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 사람의 목숨 줄은 쇠심줄보다 질기다고 했지만, 동생은 마른 풀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듯이 훅하고 날아가 버렸다.


동생은 이 세상을 일찍 떠나려고 그랬는지, 참으로 자상하였다. 동생이 수술한 후 우리 부부가 병문안을 갔을 때 동생은 퉁퉁 부은 발로 우리를 지하철역까지 바라다 주었다. 미국에서 온 누나 부부가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염려해서였다.

동생 집에 갔을 때도 자기 집에 온 손님이라며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는 그것이 동생과의 마지막 만찬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였다.

‘공부벌레’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동생. 어머님이 피아노 치시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나서인지 음악을 무척 사랑하던 동생. 바쁜 가운데서도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삶과 문화를 체험하며 행복에 겨워하던 동생, 투병생활 중에도 멀리서 사는 누나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꼬박꼬박 읽어 주던 나의 동생.

얼마 전 문득 마주친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생을 보고는 남편과 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삶을 즐기며, 활기차던 동생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신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죽음은 산자의 몫이기도 한 것 같다. 아직도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 살아 있을 때 더 자주 보고 더 잘 해주지 못한 죄책감을 피할 수가 없다.

동생을 잃은 나의 슬픔이 외아들을 앞세운 연로하신 부모님의 슬픔에는 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찬란한 캘리포니아의 가을 하늘 아래 동생의 넋을 달래려는 듯 구슬픈 진혼곡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이런 황망한 중에서도 친구들과 동료들이 슬픔을 함께 해줘서 많은 위로와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동생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하게 하였다. 나도 머지않아 떠나야 할 길을 동생이 먼저 떠났기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작은 생활의 지표를 말하고 싶다: 소소한 일생생활을 소중하게 여기기, 오늘 하루를 잘 보냈으면 기적이라고 감사하기, 매일 매일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아름답게 준비하기 등.

아무리 슬퍼해도 나의 동생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퍼할 수만은 없다. 우리 인생을 하나의 연극으로 본다면, 나는 이제 남동생이 빠진 나의 인생 연극을 충실하게 진행해야한다. 또한 남동생 몫까지 해내야한다. 유난히도 인생을 열심히, 즐겁게 살았던 동생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일들을 찾아서 매듭을 지어주려고 한다. 먼 훗날 동생을 만나면, “누나, 어서 와. 고마워”하는 동생의 환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박계영 / UCLA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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