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대한 ‘폭로’의 물결

2017-11-18 (토) 권정희 논설위원
작게 크게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주인공은 잘못을 해도 미워하기가 어렵다. 객관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일지라도 시청자/독자는 그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은 주인공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차별은 기본적으로 시각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사회의 가치와 원칙은 힘 있는 자의 시각으로 정해진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보는 주체, 여성은 보여 지는 대상이다. 여성이 ‘아름다움의 상징’인 것은 남성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는 주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성이 여성을 예쁘다며 슬쩍 껴안거나 만지고,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건 악의 없는 장난, 술김에 과격한 애무를 했다면 그건 남성다운 박력, 호텔로 유인해 강간을 했다 해도 그건 ‘거길 따라간 여자의 잘못’이 된다.


남성은 주체 못하도록 넘치는 성욕으로 당당하고, 여성이 이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면 옷차림도 몸가짐도 조신해야한다는 것이 남녀평등이 보장된 지금도 변함없는 현실이다.

남성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여성에게는 가차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21세기에는 평형을 잡을 것인가. 여성들에게 귀를 닫고 있던 사회가 여성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여성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난달 할리웃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수십년 성적 비행이 폭로된 후 거짓말처럼 세상이 바뀌고 있다. 줄기를 잡아당기면 땅속에서 고구마가 줄줄이 달려 나오듯이 할리웃, 미디어, 기업, 정계 등 각 분야 거물들이 줄줄이 성희롱·추행에 엮여 추락하고 있다.

근 한달반 자고나면 한 건씩 터지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 비행을 저질러 왔는지, 피해 여성은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성희롱·추행 규탄 물결의 파장은 크다. 성채처럼 막강하던 인물들이 망신을 당하고 현직에서 쫓겨나고 있다.

폭로의 급물살에 평생의 이미지가 금이 간 인사도 있다. 한 집안에서 두 명의 대통령을 내며 대표적 정계원로로 존경 받던 아버지 부시는 뒤늦게 나쁜 손버릇이 공개되면서 90 넘은 나이에 망신살이 뻗쳤다. 바버라 여사의 근엄한 표정이 떠오른다.

억울한 희생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성적 농담이 과했을 뿐인데’ 혹은 ‘단 한건이 문제되었을 뿐인데’ 처벌이 너무 가혹했다고 동정을 받는 인사들도 있다.

성추행 전력이 당사자의 앞날 뿐 아니라 정계 판도까지 흔드는 일도 생겼다. 앨러배머 연방상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로이 모어 공화당후보 케이스이다. 기독교 복음주의와 십계명을 내세우며 입만 열면 거룩한 모어는 10대 소녀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어린 시절 나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공화당 텃밭인 이곳에서 여론이 악화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공화당은 연방상원 다수당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성희롱·추행은 ‘성’과 ‘힘’의 문제이다. 단순한 성욕의 문제가 아니다. 힘 있는 자가 약한 대상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이다. 직장 (남자)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성적 노리개로 삼으면 여성은 문제를 제기할 데가 별로 없었다. 남성 상사가 조직에서 갖는 힘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해 여성보다 가해 남성의 시각으로 사건을 본다.

그래서 돈있고 힘있는 남성에 대해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면 피해 여성에게 의혹의 눈초리가 쏠리는 것이 사회 분위기였다. 여성이 ‘행실이 좋지 않아서’라거나 ‘돈을 뜯어낼 목적’일 것으로 색안경을 쓰고 봤다.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수모,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면 여성은 속으로 삼키거나 가까운 친구에게 비밀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여성들이 입을 열었다. 유명배우들은 물론 연방의원을 비롯한 지도급 여성들까지 ‘나도 피해자’라고 나서고, ‘폭로’에 거물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들이 용기를 얻은 결과이다. 소셜미디어 속 ‘미투’ 물결은 지난 12일 할리웃 거리에서 실제 시위로 이어졌다. 성희롱·추행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의지는 미국사회의 새로운 현실이 되었다. 거대한 숫자의 힘이다.

앨러매머, 모어 후보의 미성년자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자 같은 공화당인 미치 맥코넬 연방상원 원내대표는 여성들의 손을 들었다. “그 여성들의 말을 믿는다”고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듣고 싶었던 한마디였다.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어주는 것, 여성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여성들이 객체의 설움을 벗을 때가 되었다. 남성과 여성이 공히 시각의 주체가 될 때 남녀는 비로소 평등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