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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런던 브리지’

2017-11-1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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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제 밤 런던 다리 위를 걸었지요/가로등 불빛에 당신을 보았어요/종소리가 졸린 런던타운에 울리면서/런던다리가 내려왔어요. 하늘은 안개 속에 숨어 있었지만/우리가 키스를 했을 때 마치 마법처럼/달과 별들이 주위에서 빛났지요/런던다리가 내려왔을 때였어요. 다리 위엔 오직 당신과 나만이 있었고/두 마음은 허공중에 매달려 있었지요/그리고 강 위 높은 곳에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두 텅 빈 마음은 끌어안을 사랑을 발견했어요/두 개의 담배연기 고리는 황금의 반지로 변했지요/나는 우리가 런던타운에서 만난 날을 찬미 한답니다/런던 다리가 내려왔을 때지요.’

내가 좋아하는 여가수 조 스태포드가 부르는 ‘온 런던 브리지’다. 런던에 가면 생각나는 노래다. 이달 초 영화일로 런던에 1주일간 다녀왔다. 런던날씨는 생각보다 온화했다. 갖고 간 버버리코트도 하루 저녁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회원인 키다리 스웨덴친구 마그너스와 같이 숙소인 랭함호텔 인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하이드파크를 걸을 때 딱 한번 입었다.

런던은 그 동안 영화일로 여러 번 방문, 내 동네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피카딜리 서커스의 대형 전자간판에는 Samsung이 점멸하고 빨강색 2층버스 옆에는 손흥민의 웃는 얼굴사진이 붙어있다.


거리 공중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인 천사가 매달려 행인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펍 앞에는 여전히 보도까지 꽉 메운 술꾼들이 너도 나도 손에 맥주잔을 들고 서있다. 버스를 타고가다 당장 뛰어내려 그들 속에 끼어들어 맥주 한잔 하고픈 생각에 갈증이 났다.

런던은 차도의 폭이 좁은 탓인지 교통 혼잡이 맨해탄 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차도도 인도도 차와 사람들로 대 혼잡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번잡함으로 겪는 피로는 바비 다린이 노래한 ‘어 나이팅게일 생 인 바클리 스퀘어’의 바클리 스퀘어를 비롯한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손바닥만한 공원에서 풀어도 될 것 같다.

하루 가는 비가 왔는데 비 맞은 탓인지 런던에서 처음으로 대형 우산가게를 봤다. ‘셰르부르의 우산’의 우산가게가 생각났다. 노점에 매어달린 히틀러 콧수염을 한 트럼프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를 보고 킬킬대고 웃었다. 미국에서도 저런 셔츠 파나.

랭함호텔을 비롯해 클래리지와 로즈우드호텔로 옮겨 다니며 인터뷰한 배우가 자그마치 22명.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세트방문하고 인터뷰하고 영화까지 보는 초 강행군 일정이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새새 짬을 내 거리를 걸었지만 피곤이 누적돼 늦가을 런던정취를 만끽하지 못해 지금도 찜찜하다.

만난 배우들은 줄리아 로버츠, 벤 애플렉, 에디 레드메인, 미셸 파이퍼, 갤 개돗, 페넬로피 크루즈, 오웬 윌슨, 브라이언 크랜스턴 및 미셸 도커리 등. 이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현재 촬영 중인 ‘팬태스틱 비스츠 2’를 비롯해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살인’과 ‘래스트 플랙 플라잉’ ‘저스티스 리그’ ‘원더’ 그리고 TV시리즈 ‘갓리스’ 등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인터뷰에 녹초가 된 몸으로 애플렉과 개돗 등 호화캐스트가 나오는 ‘저스티스 리그’를 봤는데 어찌나 꼴불견인지 난장판 액션 소음 속에서도 깜빡 깜빡 졸면서 봤다.

‘팬태스틱 비스츠 2’를 찍고 있는 런던 인근의 리브스텐 스튜디오는 ‘해리 포터’시리즈를 찍은 곳이다. 의상과 소품실에 이어 1927년대 파리거리 세트를 둘러보고 뉴욕 고층건물 꼭대기 세트에서 영화에 나오는 레드메인 등을 인터뷰했다.

이번 런던 방문에서 가장 뜻 깊었던 일은 ‘영화스타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12월 15일 개봉)의 실제 주인공 피터 터너를 만난 것. 내년으로 창립 75주년을 맞는 HFPA가 이를 기념해 대부분 영국의 영화와 TV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메이페어 호텔에서 연 파티에서였다.


우연히 나만한 키를 한 대머리에 단단한 체구를 지닌 남자와 대화를 나눴는데 이 사람이 “내가 그 영화의 피터 터너”라고 자기를 소개했다.(사진) 난 그에게 “정말이냐. 너무나 반갑다”며 악수를 나눈 뒤 서로 긴 얘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터너는 영화에서 자기 역을 한 제이미 벨과 얼굴이 닮았다.

이 영화는 할리웃 황금기의 섹시스타 글로리아 그램이 생애 마지막 무렵인 56세 때 런던에서 만난 28세 연하의 터너와의 로맨스를 그린 것이다. 영화에서 그램으로는 아넷 베닝이 나온다. 터너는 먼저 “나 한국 음식 아주 좋아 한다”고 운을 떼더니 얘기를 자기 애인에게로 돌려 ”그램의 눈을 보면 그 안으로 빨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그램은 참으로 대단한 여자였다“고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램의 ‘빅 히트’를 보고 그에게 반해 그램의 팬이 되었다고 말하자 터너는 “그 영화와 ‘인 더 로운리 플레이스’가 좋았었지”하면서 “우리는 정말로 뜨거운 사랑을 나눴고 난 지금도 그램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내가 좋아하던 옛 스타의 실제 연인을 만나 과거를 얘기하자니 내가 마치 흑백영화의 주인공이나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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