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끝자락에 또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됐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지 40년 만에 딸 가족과 같이 살기 위해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이사왔다. 이사 온 다음날,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낯선 주변을 익히려고 지도를 보다가 ‘한국광장’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 나와서 400m만 가면 삼거리에 아주 조그만 터에 있는 광장이다.
돌로 잘 다듬은 사각 단 위에는 끝이 아주 날카로운 기념비가 있었다. 어떤 기념비인가 하고 앞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벨기에의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였다. 그 중간에 ‘1951년-1953 한국’이라는 금빛 글이 둥그렇게 걸려 있다.
기초 반석 위의 대리석 판에는 ‘자유세계를 위하여 한국에서 전사한 벨기에 용사들에게’라는 짤막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추모비의 정면에 벨기에 전사자 105명, 베네룩스 전사자 2명, 한국인 9명(한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것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나도 모르게 젖어 왔다. 이 먼 곳에서도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고국과 연결되는 고리를 찾은 것에 나 자신이 스스로 놀랐다. 아주 먼 시공간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전쟁이 터졌다. 그 바람에 형은 군에 갔고, 누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고, 아버지는 다락에 숨어 살았고, 어머니와 나는 외갓집으로 피난 갔다. 3년간의 긴 전쟁을 겪은 한국은 지옥보다도 더 험한 꼴을 봤다.
반 만년을 자랑하는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피를 많이 흘린 동족살상의 참극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UN연합군이 한국에 와서 참전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념과 사상이 서로 다르다고 남을 죽이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용서하고 싶지 않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지울 수 없는 최악의 역사를 썼다.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정전이 시작된 지 64년이 지났지만 그 비극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 조국과 내 형제인데 용서하고 서로 힘을 합해서 잘 살아보자고 요구하지만 과거를 까맣게 잊고 모든 것을 덮어 묻어놓고 말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까짓 과거는 무슨 과거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과거는 언젠가는 현재로 둔갑하여 다시 나타난다.
인류의 수천년 역사를 읽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과거의 복습이지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 과거는 현재진행형의 연속일 뿐이다.
오늘 오후에 장을 같이 보러 갔다가 오던 아내가 어제 한국광장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걸 봤다고 말한다. 아내에게 시장 봐 온 걸 대충 정리하라고 이르고 곧바로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 가보니 깃대 오른쪽에 태극기, 가운데에 유엔기, 왼쪽엔 벨기에 국기가 걸려있었다.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게양된 국기를 올려 봤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발끝에는 화환이 바람에 넘어져 엎어져 있었다. 곧게 세워서 추모자의 이름판 밑에 세우고 나니 화환을 증정한 이를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조영진 중장.
역사를 다시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과거를 돌려놓아 젊은 참전용사들이 전쟁 후에 개선하여 꽃다발을 안겨주는 애인을 얼싸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전사자의 추모비가 아니라 개선의 기념비로. 내일이라도 꽃집에 가서 국화 화분을 하나 사서 갖다 놓아야겠다.
<
이재훈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