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숨 쉬는 감사함

2017-11-11 (토) 김홍식 /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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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이상의 폭염에 마른 사막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산불이 났다. 시커먼 구름이 솟아오르면서 하늘이 점점 검게 되고 매캐한 연기와 재가 날리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산불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우리 집은 강제 대피령 구역에 들어가고 말았다.

딸과 아내의 재촉에 간단한 옷가지를 챙기면서 꼭 가지고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잠깐 생각했다. 여권, 의과대학 졸업장과 전문의 자격증 등 의사면허 관련 서류 외에는 딱히 챙길 것이 없었다. 집에 있는 온갖 것들이 없으면 아쉽겠지만 없어도 살겠구나 싶으니 “내가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모으며 살았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마저 들었다.

조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불안감 때문인지 기침이 나오고 숨쉬기도 힘들어지면서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몇 해 전 남미의 어느 섬 근처에서 수영하다가 물에 빠질 뻔 했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섬으로 수영을 하며 나아갔다. 갈 때는 순조롭게 갔으나 섬에 도착하려니 물살이 세어지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자니 물살이 반대로 흐르고 있어 그만 기운이 빠지고 말았다.

나는 옆에서 수영하던 사람에게 긴급구조 해달라는 손 신호를 보내고 바다 한가운데서 숨을 헐떡거리며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물을 먹지 않으려고 제자리 수영을 하는데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숨은 왜 그렇게 차오르는지.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10여분 후 구명보트가 도착해 해변으로 나왔다. 해변에 널브러져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평소에 당연시 하는 호흡, 탄산가스와 산소의 교환과정도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가슴의 갈비뼈와 근육이 잘 움직여 주어야 공기가 기도로 들어간다. 신경이나 근육이 무력증에 빠지는 신경계통의 질환이나 늑막염으로 숨이 가쁜 분들이 많다.

일단 코를 통해 들어간 공기는 기관지를 통해 폐포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과정도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공기의 통로인 기관지 내면은 바깥에서 들어가는 공기의 온도를 맞추고 먼지, 세균을 걸러주기 위해 섬모가 많이 있고 여러 번 가지를 쳐서 점점 가늘어진 작은 기관지 끝에는 꽈리 같이 생긴 폐포가 수없이 달려있다. 천식이나 폐기종은 공기의 통로가 좁아져서 공기가 폐포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함으로 숨쉬기 곤란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관지의 섬모 활동은 떨어져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쉽게 올수 있다. 기관지 끝에 연결되어 있는 폐포는 공기의 신속한 교환을 위해 표면적을 최대한으로 넓게 설계되어 총면적이 테니스장을 덮을 정도이다. 매우 뛰어난 섬유질로 되어 있는 이 조직은 좋은 풍선같이 탄력이 좋은데 담배나 공해에 의해 파괴 될 수 있다.

기관지 끝 폐포까지 도달한 공기는 닿아있는 모세혈관 안의 탄산가스를 가져가고 산소를 몸 안에 넣어준다. 모세혈관의 혈액은 심장에서부터 오는 것인데 공기가 있어도 심장이 약하여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면 몸에서 산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

심장이 약해서 혈액을 순환시키지 못하면 그 압력이 폐로 몰리게 되고 허파에 물이 고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산소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숨을 헐떡거리게 되는데 이런 질환을 심부전증이라고 한다. 이는 땅위에 있지만 물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나무는 탄소 동화작용을 통해 인간이 뿜어낸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필요로 하는 산소를 만들어내어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대개 큰 나무 한 그루에서 두 사람이 하루 동안 숨 쉬는 데 필요한 것 보다 많은 산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이 땅에서 숨 쉬고 사는 것도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창조주가 만든 나무에 신세를 지고, 코에서부터 기관지, 폐포와 혈관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움직여 주고 있기에 산소를 얻어 살고 있다.

공기는 호흡을 통해 생명으로 바뀌니 한 모금의 호흡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 호흡이 힘든 이웃들의 고통 앞에 숙연해 진다. 대기권으로 내뿜는 나의 공기가 이웃의 숨결이며 생명이다. 상쾌한 공기가 되도록 감사하며 깨끗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김홍식 /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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