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효 UC버클리 재학
짙은 눈썹과 동그란 눈동자. 통통한 볼살과 여자아이보다 긴 속눈썹이 인상 깊었다. 학교에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볼 수 있는 얼굴이라서 더 반가웠고, 이제는 그 얼굴마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한국에 잠깐 다녀와야 해.” 갑작스럽게 온몸으로 퍼진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국에 갔었다는 사실은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아이의 시간이 멈춰버렸을 때, 남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무정하게도 잘 흘러갔다. 변해가는 계절에 따라서 잎사귀는 더 풍성하게, 꽃은 더욱더 아름답게 피고 있었다.
“그 댁 아주머니, 아들 좋은 대학교 보내겠다고 공부만 그렇게 시키시던데 얼마나 슬플까?”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시간이 멈췄을 때도, 그녀는 사람들의 걱정을 가장한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흥미로운 화젯거리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작가 김애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의 그 아이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소설 속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현실은 그 누구보다도 비참했다. 어린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입동’이라는 차갑고 냉정한 시기에 멈춰버린 어머니는, 죽은 아들 영우의 흔적을 차마 지우지 못했다.
그녀가 무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얼룩진 벽지를 억지로 뜯어내지 않는 것이었다. 아들의 얼룩진 벽지 위에 새로운 벽지를 덧대는 것. 아픈 추억은 추억대로 가슴속에 묻은 채,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그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누구나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젊음을 잃어가고 있듯이, 삶은 어쩌면 상실과 이를 받아들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날 때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잠시 그 아이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게끔 내버려둔다. 그리고 다만 좋은 곳으로 갔기를 진심을 담아서 기도한다. 차갑고 냉정한 삶 속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 발자국만 나가면 따뜻한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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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효 UC버클리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