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감 한 개

2017-11-10 (금) 12:00:00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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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린나무를 몇 그루 심었더니 두더지의 방해로 나무들이 버티지 못했다. 비워둔 양지 바른 땅이 아까워서 남편은 튼튼한 철사 망을 땅속에 설치한 후 다시 어린나무들을 심었다. 일 년 후 기대했던 감나무에 매달린 흰 꽃송이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후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 주황색으로 물든 나뭇잎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빛내는 감 한 개가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다. 감 한 개의 생존 비밀이 신기하여 나는 매일 들여다본다.

한 개의 감도 혼자서 버티느라 남모를 고통과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며 가지마다 열매를 달고 옆에 서 있는 레몬 가족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한다. 지난 여름 아들이 방학이 되어 집에 온 날 밤에 크게 혹은 작게 웃으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여 보니 대화 상대는 컴퓨터 속의 가상 인물이었다. 늦은 밤 아들에게 성화를 낼 수가 없어서 다음 날 아침에 다정하게 어젯밤에 친구가 온 줄 알았다고 하니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고 미안해했다. 외부 소음까지 차단하며 혼자서 즐기는 문화를 굳이 외면하고 싶지는 않지만, 청춘이어서 외롭지 않은가 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끔찍한 청소년 범죄와 입에 담기도 싫은 아이들의 성폭행이 연일 일간지에 실렸었다. 놀란 부모들은 아이들을 친구 집에 보내길 꺼리고, 갈 경우에는 친구 집 호구조사 후 자기 간식을 싸서 보낸다고 한다. 불신의 인간관계 속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이 줄어들고 캥거루 형 인간으로 될지 걱정도 된다. 그 아이들이 내 친인척이거나 이웃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서로 신뢰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집 외의 공간도 필요하다. 내가 어릴 땐 사방놀이나 공기놀이를 하다가도 무료하면 책이 많은 친구 집에서 소일하다 저녁 먹으라는 호출에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가끔은 밥 먹고 가라는 친구 어머님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앉기도 했었다. 우리 집에서 먹어보지 못한 반찬이 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 친구의 어머님이 담그신 가자미식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세월이 흘러도 놀이나 맛은 그리움이다.

찬 서리 맞으며 긴 겨울을 견딘 후, 외로움의 쓴맛을 맛본 감나무에 감꽃 다시 열리면 물과 바람과 태양을 벗 삼아 단맛의 소중함을 한 알의 열매에라도 공급하여 훗날 단감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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