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말라”

2017-11-0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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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뷰캐넌은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로 지난 2013년 타계했다. 그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학설은 ‘공공선택 이론’이었다. 뷰캐넌은 국가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동기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와 행정이 겉으로는 공익을 표방하지만 이런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가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은 게 미국이었으니 한국의 실상이 어떠할지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요즘 이와 관련한 한국사회의 충격적 민낯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수년에 걸쳐 매달 1억원씩, 총 40억원이 넘는 현금을 국정원으로부터 상납 받았다는 뉴스는 사익추구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돈이 오간 은밀한 방식에서 국정원과 청와대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이 포착된다. 정무수석들 또한 매달 500만원씩의 상납금을 꼬박꼬박 챙겼다니 국정원은 국민세금으로 청와대를 위한 ‘현금지급기’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의 ‘내로남불’은 역시 차원이 다르다는 게 또 한 번 확인됐다. 그는 야당 대표시절 국정원과 국회의 특수활동비에 대해 ‘묻지마 예산’ ‘눈먼 돈’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비판한 적이 있다. 박근혜의 논리는 박근혜의 언행으로 반박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인식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그의 정치적 비극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재차 상기시켜주는 씁쓸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개념 실종이 박근혜 한사람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지도층의 분별력 부재는 분야와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근대성과 전근대적 가치가 혼재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점차 근대성을 확장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이번 스캔들과 같은 행태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전근대성을 상징해주는 어휘들 가운데 하나가 ‘통치’다. 통치라는 말 자체는 중립적일지 몰라도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이 단어가 권위적인 함의를 지니게 됐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통치자금’이니 ‘통치행위’니 하는 표현 속에는 권력자의 당연한 권리행사인 만큼 법률적 합리성이나 타당성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아주 낡고도 위험한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경제권력들의 행태 또한 정치권력과 판박이다. ‘황제경영’은 기업을 사유물처럼 여기는 총수들의 봉건적 의식을 비꼬는 말이다. 이들은 기업을 개인의 소유로, 그리고 ‘경영’이 아닌 ‘통치’의 대상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자기 집을 고치고 집에 걸어 둘 그림을 사는 데 회사 돈을 마치 제 돈인 양 쓰는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법인’이라는 독립적인 개체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망각한 데서 비롯되는 행위다. 끊이지 않는 사학비리와 종교의 타락 또한 비슷한 가치관에서 시작된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일에는 허술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은 국민들의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권력과 돈을 주무르는 지도층의 법률적 도덕적 일탈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단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나갈 길이 없다.

옛 성현들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그리고 종교권력을 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가르침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도덕경 10장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낳고 기르라.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말라. 모든 것 이루나 거기 기대려고 하지 말라.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말라.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한다.(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현자들은 이미 수천 년 전 권력자들이 지녀야 할 분별력에 관해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런 지혜는 ‘근대적 가치’라기보다 ‘보편적 가치’라 부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러니 한국사회 선진화를 위한 근대적 가치의 확산은 곧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라 봐도 무방하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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