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삶 속의 야구

2017-10-21 (토) 최청원/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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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월드 시리즈가 가을과 함께 LA에 성큼 다가왔다. 미국에서 진정한 봄의 시작은 메이저리그 야구의 첫 시구하는 날이고 월드시리즈를 개최할 때가 가을을 실감케 한다고 한다. 야구가 일반 대중들의 삶속의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 한인들도 다르지 않다. 성실히 직장과 가게를 지키며 바쁘게 사는 중에도 야구중계는 빼놓지 않고 챙기는 분들이 내 주위에도 많다.

어린 소년시절부터 동네 빈 공터에서 하던 공놀이가 리틀리그로 이어지고 학교의 선수로 활약하며 치열한 경쟁 속 땀과 노력으로 마이너리그,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월드시리즈’는 일생의 소원을 이루는 꿈의 제전이다. 우린 그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인 눈부신 경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29년 전 다저스가 진출한 월드시리즈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경기 암표가 엄청난 값에 팔리던 그때, 팬서비스 차원으로 엽서를 보내면 추첨하여 한정된 사람에게 입장권을 배부하는 제도가 있었다. 한 주소 당 한 장의 엽서만 인정해 주었다. 야구 광팬인 나는 친구들과 환자들에게 허락을 받아 엽서 50장을 보낼 수 있었다. 다행히 아들 이름의 엽서가 당첨되어 1988년 경기를 아들과 함께 외야석에서 관람하던 그때의 흥분과 감동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후 29년이 흘렀다. 또다시 관람 티켓을 신청하라지만 이제는 엽서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이메일 주소로 신청하라고 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에겐 수월치 않아 디지털 세대인 아들이 친구들의 이메일 주소를 동원해 30명의 이름으로 신청했으나 모두 추첨에 뽑히질 못했다.

크게 실망한 나에게 아들이 한 장당 최저 600달러의 암표를 사주겠다고 위로했다. 아마도 29년 전 추억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물론 거절했다. 그런 식으로 월드시리즈를 관람하고 싶지 않다는 내 나름대로 야구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야구에 대한 나의 사랑과 정열은 누구 못치 않았다고 자부한다. 평범한 내과개업의지만 야구를 열렬히 사랑하는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온 나는 이곳 한인라디오들이 야구중계를 할 때 해설을 담당한 적도 있었다. 야구는 일반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서민의 스포츠라는 것이 언제나 강조하는 나의 야구관이다. 그래서 29년 전 비싼 암표가 아닌 엽서로 추첨 받아 아들과 같이 경기를 관람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합의에 도달했다. 둘이 같이 큰 스포츠바를 찾아가 시원한 생맥주를 앞에 놓고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야구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많은 손님들과 함께 함성과 박수로 응원하고 관람하며 즐기기로 했다.

인생이 합창이듯이, 응원도 합창이다. 열기의 동참이다. 다저스가 승자가 되면 좋겠지만 패자가 되더라도 아쉬운 즐거움을 가질 것이다. 그동안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29년 전의 감동을 다시 떠 올릴 것이다. 같이 시청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우리는 전 예일 대학 총장으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였던 바트 지아매티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 찾아 올 내년 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야구엔 우리들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다. 메이저 야구경기는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봄과 더불어 시작되어 뜨거운 여름에 활짝 피어나 하루 온 종일 오후와 저녁 한때를 채운다. 약간의 쌀쌀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월드시리즈가 막을 내리면 우리 가슴속에는 늦가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된다”

<최청원/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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