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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2017-10-20 (금) 횡성=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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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빚어낸 자작나무숲, 7080추억 박제한 교실‘아련’

횡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횡성 우천면‘미술관 자작나무숲’. 생육환경이 맞지 않아 26년 시간에도 울창한 숲을 이루진 못했지만, 농약과 비료 없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꿔 호젓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횡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올챙이추억전시관의 오래된 교실. 책가방 도시락 등이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횡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안흥의 19개 찐빵 업체 중 11곳은 아직까지 손으로 빚는다.


시간은 공평하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은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에 공통으로 주어진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쌓인 모양과 색깔은 제 각각이다. 그래서 누구의 시간에는 짙은 향기가 배어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에는 아련한 추억이 묻어난다. 켜켜이 쌓인 세월, 결이 다른 강원 횡성의 시간 여행지를 소개한다.

26년 가꾼 편안한 휴식처, 미술관 자작나무숲

햇살 좋은 가을날 오전, 우천면 ‘미술관 자작나무숲’ 입구에 도착하자 고양이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몰려들었다. 자작나무숲에 고양이라….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지만, 나름 사연이 있다. 처음에 뱀을 퇴치할 목적으로 몇 마리 ‘풀어 놓은’ 게 지금은 10여 마리로 불어났다. 숲 지기인 원종호 관장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은근히 집사 노릇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뱀이 없어진 건 좋은데, 다람쥐나 비둘기까지 잡아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허허”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6㎞, 작은 개울이 휘돌아 나가는 물 머리에 자리 잡은 자작나무숲은 무려 3만3,000㎡(1만평)가 넘는 규모다. 왜 하필 자작나무일까? 서양미술을 전공한 원종호 관장은 백두산 자작나무숲에서 받은 ‘쇼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순백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돼 천지(天池)를 보지 못해도 상관없었고, 이제 더 이상 여행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면을 찾아 헤매는 과정으로 여겨 온 여행을 포기할 만큼 큰 충격이었다. 고향 땅에 꼭 자작나무숲을 가꾸겠다는 각오도 그때 다졌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1991년 묘목으로서의 가치가 없어 산림청에서 폐기하는 1만2,000그루의 작은 나무를 구해 심은 게 시작이었다. 그러나 북방 고산지대에 자라는 자작나무는 생육환경이 맞지 않아 절반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이후 1,000주의 우량 묘목을 추가로 구입해 심어 현재 4,000그루의 크고 작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화전민이 밭을 일구던 터여서 뽕나무 느티나무 등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매표소를 통과해 ‘스튜디오 갤러리’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아래로 늘어진 복분자 줄기도 어우러져 있다. 복분자나무 껍질에는 하얀 분가루가 묻어 있어,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이면 자작나무와 함께 이 숲을 하얗게 장식한다. 수직으로 뻗은 자작나무와 곡선의 복분자 넝쿨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더 없는 사진작품 소재다. “흰색은 가장 밝은 색이죠. 햇볕이 비칠 때 흑과 백의 강렬한 대조가 큰 매력입니다. 쌀쌀한 겨울날 흰 빛에는 차갑지만 애잔한 끌림이 있습니다.” 원 관장의 흰색 예찬론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2~3시간씩 숲을 다듬는 일에 몰두한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즉흥적인 작업이 많다. 저절로 자라난 풀과 나무를 제거할지 말지도 작업하면서 결정한다.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면 효율성만 앞세울 게 틀림없고, 깔끔하게 다듬을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 자작나무숲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스튜디오 갤러리’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셔도, 2개의 전시장과 숲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걸어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2만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입장료에는 차 한 잔 값과 갤러리 관람료 외에,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조용함 호젓함 여유로움을 누리는 대가가 포함돼 있다. “세상에 빨리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의 말처럼 이 숲도 나무가 자라는 만큼만 아주 천천히 변해갈 것이다.

꼬깃꼬깃한 시간이 쌓인 곳, 올챙이추억전시관

새말IC에서 약 15km 떨어진 둔내면 궁종리 산골 자락에는 꼬깃꼬깃하게 쌓다 못해 바스러질 것 같은 시간의 편린을 모은 ‘올챙이추억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기성세대는 올챙이 적 추억을 떠올리고, 젊은 세대는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신혁철(80)ㆍ이예숙(75) 부부가 젊은 시절부터 수집해 온 온갖 생활물품을 전시한 곳이다.


중고등학생의 교복, 책가방, 도시락, 책걸상과 칠판은 전시실 전체를 1970~80년대 교실로 꾸미고도 남는다. 방 한 칸을 가득 메운 풍로(곤로)와 보온물병, 보온밥솥 등은 ‘응답하라’ 유의 드라마 소품을 모아 놓은 듯하다.

로보트 태권V와 아톰 포스터, 종이인형 옷 입히기와 딱지 등은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물건들이다. 신문 스크랩도 전시하고 있다.

신씨 부부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18년 전이다. 그동안 작은 연못을 파고, 서너 채의 전시관을 짓고, 정원을 일군 노력이 적지 않았다. 이예숙씨는 나이가 들면서 관람객 앞에 나서는 것도 점점 꺼려진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이 자주 내려와 관리한다지만 수집한 물건이 너무 많다. 연도와 종류별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전시하지 못하고, 잡동사니처럼 창고에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은 특히 안타깝다.

잊혀진 경강로 되살린 안흥찐빵

새말IC에서 멀지 않은 안흥은 한때 횡성 못지않게 번화한 곳이었다. 문재를 사이에 두고 평창 방림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안흥은 서울과 강릉을 잇는 경강로의 주요 길목이었다. 차도 사람도 대관령을 넘기 전에(혹은 넘어와서) 힘을 비축하는 곳이었기에 숙박업소와 식당이 넘쳐났다.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잊혀져 가던 안흥은 찐빵으로 다시 부활했다. 안흥면에만 19개 찐빵 업체가 성업 중이고, 그중 11개 곳은 국산 팥만 사용해 직접 빚는 손 찐빵을 고집하고 있다.

안흥찐빵은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시작한 축제가 어느덧 11회를 맞는다. 매년 10월 열리는 축제에선 ‘빵양과 팥군’ 캐릭터를 앞세워 찐빵 만들기, 찐빵 경매, 커플 찐빵 예쁘게 먹기(안전을 고려해 빨리, 많이 먹기는 하지 않는다)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인근의 도깨비도로 체험과 주천강 생태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횡성=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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