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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타락

2017-10-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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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선 기간 터진 스캔들 중 가장 지저분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 테이프가 아니었을까. 2016년 10월 워싱턴포스트는 2005년 트럼프가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스타일 경우 (여성들은) 성기를 잡든 뭘 해도 그대로 놔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이야기를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했다.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아마 정치 인생이 끝났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도널드는 “내가 한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그냥 넘어갔다. 자기가 주관하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 참가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막말을 쏟아붓고 유부녀를 포함한 숱한 여성들과의 불륜 사실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 그로서 그 정도 발언은 별 거 아니라고 유권자들은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그보다 먼저 가주 주지사로 나왔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수많은 여성들이 나와 성추행 사실을 고발했으나 2003년 주지사에 당선됐다. 이 여성들에 따르면 아놀드는 수십년 동안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마구 만지고 수영복을 벗기려 하는가 하면 강제로 무릎 위에 앉히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혐의를 부인하던 그는 결국 “내가 불쾌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영화 활동을 하던 70년대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의 성추행 사실을 증언했지만 그는 한번도 형사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물증이나 증인이 없이 두 사람의 말뿐이고 거기다 오랜 시일이 지난 사건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도’로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놀드를 능가하는 할리웃 유명인사인 빌 코스비도 수십년 동안 여성들에게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을 일삼은 의혹을 받고 있지만 정작 기소된 것은 단 한 건 뿐이며 그나마 배심원 의견 불일치로 유죄 평결에 실패했다.

요즘 할리웃이 섹스 스캔들로 시끄럽다. 이번에는 미 영화계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수십년 동안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들 여성과 한번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면서도 자신의 행동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아놀드처럼 자신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60~70년대의 산물이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가 지금까지 성추행하고 합의금을 지불한 여성만 8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그가 세운 와인스틴사는 그를 해임했다. 와인스틴은 겉으로는 여권 신장을 옹호한다며 민주당에 거액을 헌금한 인물이어서 충격은 더 크다. 그 아내 조지나 챕먼은 이번 스캔들이 터지자 이혼을 선언했다.

그는 직원들을 통해 영화 관련 할 말이 있다며 여배우들을 자기 호텔 방으로 불러 들인 후 옷을 벗게 하거나 마사지를 해달라는가 하면 자기가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피해자 중에는 오스카 수상자인 기넷 팰트로나 앤젤리나 졸리 같은 인물도 포함돼 있다.

와인스틴사가 있는 뉴욕은 2005년 성폭행에 관한한 시효를 없애버렸고 가주도 작년 이를 철폐해 올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형사적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피해자들이 그와 이미 합의를 한 상태고 시효가 없어진 2005년 이전 사건은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갔던 것이 1997년이다. 그 후 20년이 지났는데도 돈과 힘을 이용해 여성들을 괴롭히는 인간들은 아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꼬부라진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로잡을 수 없다”던 칸트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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