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마 부추기는 악마 바람

2017-10-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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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TV 화면이 온통 시뻘겋다. 연쇄산불 보도이다. 북가주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 인근의 나파, 소노마 등 8개 카운티를 산불이 휩쓸고 있는데다,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애나하임 힐스 지역도 불길에 휩싸였다.

남가주에 비해 상황이 훨씬 심각한 북가주에서는 최소한 17개 산불이 동시다발로 타오르며 삼림이나 주거지 가리지 않고 화염으로 삼켜버리고 있다. 무자비한 불의 악마, 화마(火魔)로 인해 이미 최소한 15명이 목숨을 잃었고, 150명의 행방을 알 수 없으며, 2,000동의 건물이 잿더미가 되거나 불탄 골조로 남았다.

불길이 휩쓴 곳이 대부분 언덕 위 전망 좋은 곳이다 보니 화재로 불탄 집들은 대개 대저택들이다. 정원 끝이 바로 산비탈에 면하며 수영장이 시원하게 자리 잡은,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저택들이 벽돌조각 시멘트 조각 철물골조만 뒤엉킨 폐허로 변했다.


TV 뉴스에 나온 한 남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가 우리 양아버지 집입니다. 지난 주말 여기서 파티를 했었는데 지금은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피해가 큰 산타로사 지역의 한 남성은 자기 집이 전소되고 타닥타닥 마지막 불길만 남아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기가 막혀 허허 웃었다.

“자연의 힘이란 이렇게 막강하네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동네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어요.”

지역 주민들은 ‘핵폭탄’이라는 표현을 썼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10월은 산불 시즌이다. 고온 건조한 여름을 지나며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이 마를 대로 말라서 불씨 하나 날아들면 그대로 불이 붙는다. 광활한 삼림에 건조한 불쏘시개 감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으니 불이 타오르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10여개 산불이 동시다발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하나 더 끼어든다. 바로 디아블로이다. 스페인어로 ‘악마’를 뜻하는 디아블로 바람이다. 고온 건조한 강풍인 악마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불씨는 사방으로 퍼져나가 산불대란을 일으킨다.


남가주의 샌타애나가 북가주에서는 디아블로로 불린다. 1991년 오클랜드 대화재 때 디아블로 밸리 쪽에서 베이 지역으로 불어온 바람이 원흉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악마 같이 광포한 바람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

샌타애나와 디아블로는 기상학적으로 푄 바람에 속한다. 높은 산맥을 끼고 일어나는 바람으로 원래는 알프스 산중의 바람 이름이었다. 뜻은 ‘뜨거운 불’.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의 경우, 동쪽 내륙의 로키 산맥을 타고 올라갔던 바람이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극도로 건조하고 고온인 강풍이 형성되면서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곤 한다.

불은 아직 진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계속 훨훨 타오르고 있다. 화마를 악마바람이 부추기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바람이 어서 잦아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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