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神話 같은 희망
2017-10-10 (화) 12:00:00
조신숙(요셉한국학교 교장)
달을 볼 수 없는 음력 초하루를 ‘삭(朔)’이라 하고 15일 이후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은 ‘망(望)’이라고 한다. 망이 되어 달 속의 토끼를 그리며 차가운 느낌마저 주는 보름달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제 달은 내게 더 이상 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순수한 동심 속에선 또렷하게 보이던 모습이었는데 왜 보이질 않는 걸까? 1969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후부터 환상은 사라져 버렸다.
성장하면서 산타 할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의심치 않고 실재한다고 믿었던 사실들에 대한 희망이 깨어져 버렸을 때 남는 것은 절망감에서 오는 배신감뿐이었지.
그럼에도 삶에서의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도 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을 살갑게 느끼게도 할 수 있는 불가능한 힘을 가진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진리를 곳곳에서 만난다.
2005년 다큐 ‘휴먼원정대’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 팀이 등반 중 조난당해 사망한 동료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시 에베레스트에 올라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실화다. 죽은 자와의 약속에서 시작한 불가능에 도전한 희망의 끝은 ‘친구의 영면’이었다. 한국인의 위대함마저 보여주는 희망이다.
56년 만의 최강 태풍 ‘하비’를 맞은 휴스턴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우리 교회에선 구호 헌금을 했다. 4만 명이나 된다는 피해 주민들은 슬픔 속에서도 의연하게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나눔에서 찾은 희망을 본다.
인도네시아 부기스 족의 20m가 넘는 ‘피니시’라는 큰 범선은 설계도가 없다. 그들은 수백 년 전 조상들로부터 배운 설계도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지식으로 물려받아 만든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20세가 되어서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20년을 기다린 희망이 이루어지는 때다. 희망을 이루려면 묵은 장과 같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누구에게든 바람이 있지만 그 바람이 찍어낸 벽돌처럼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희망대로 이룰 수도 있지만 달 속의 토끼나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때처럼 절망으로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지 마주친 고난에 인내심을 발휘하다 보면 마침내 희망은 보름달 같은 밝은 얼굴로 우리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神話와 같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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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숙(요셉한국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