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

2017-1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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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다. 한 중에서도 으뜸은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이다. 자기 조상 죽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으면 그 후손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 한을 풀어야 하는 것이 도리였다.

한국에서 노무현이 죽은 지 8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그 한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박원순 서울 시장이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되는 적폐 청산이 정치 보복이란 얘기도 나온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내가 아는 최대의 정치 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했던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자살한 것은 가족들이 박연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이 노무현을 미워해 죽인 것이란 뜻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무 수석을 지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부 싸움 뒤 부인은 가출하고 혼자 남아 자살했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질렀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정의원은 막말에 대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와 부인 권양숙 등은 정의원을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홍준표 자유 한국당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뇌물 수수’ 혐의를 주장하며 “권양숙 여사 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노무현 자살 사건의 핵심은 왜 그가 자살했느냐에 있다. 그가 죽은 지금 본인의 심정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당시 사건일지를 보면 대략은 짐작이 가능하다. 2009년 4월 9일 검찰은 박연차와 노무현 일가 사이에 10억원의 돈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1일에는 권양숙을, 12일에는 노건호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다. 5월 11일에는 노무현의 딸 노정연 부부가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며 노정연이 박연차의 돈 40만 달러를 수수한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2주 뒤인 23일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봐 노무현은 가족들이 뇌물죄로 줄줄이 소환되고 기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있었으며 방송을 장악하려 시도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결국 이명박을 감옥에 집어넣어 한풀이를 하겠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의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은 일이라도 내가 하면 적폐 청산이고 남이 하면 정치 보복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편이 잘못한 일을 고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광우병 난동극이다. 한국사람 모두 광우병 걸려 죽게 만든다던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광우병 걸려 죽은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어째서 이런 난동극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정치 보복 이야기는 깨끗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노무현의 한을 풀겠다며 정진석 등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권양숙을 비롯한 노무현 일가의 뇌물 수수 정황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으로 한국 안보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지금 불필요한 정쟁으로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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