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태아 프로그래밍

2017-10-05 (목) 12:00:00 박윤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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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은 나이 들어서 성인병으로 고생할까? 또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가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기본적인 길을 만들고 다음 세대는 그 길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태어난 후의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이 유전자보다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강력한 요인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수정에서 태어나기까지의 9개월이 탄생 이후의 삶을 이끈다고 하는 ‘태아 프로그래밍’이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태어난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 따라서 태아기 엄마 뱃속에서 일어났던 일이 태어난 후의 삶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 메디컬센터의 테레사 로즈붐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독일 나치가 모든 식량을 차단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된 네델란드의 임신 여성들을 토대로 연구했다. 그런데 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던 임신 여성들이 출산한 아기들이 대부분 자라서 성인병으로 고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저체중 아기들이 비만이 되는 경우와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나라도 6.25당시 태어난 아기들이 성인이 되어 당뇨병 등 성인병으로 대부분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특정유전자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DNA 안에 유전자는 존재하지만 메틸기(CH3)라고 하는 채내 분자들의 활동에 의해서 유전자 작동이 멈춘 것이다.

쉽게 말해 뱃속에서 굶주림을 겪었던 태아가 걱정했던 일은 배고픔이지 비만은 아니다. 따라서 필요없어진 유전자 기능을 꺼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태아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형제 자매들 간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보다. 나 또한 5분 차이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생김새는 많이 닮았지만 체질과 성향은 아주 다르다.

임신 중 받는 스트레스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산모의 체온이 올라가면 양수의 온도도 올라가게 되고 그만큼 태아는 저체중 조산의 위험이 있고 이것이 비만으로 이어지고 스트레스 조절 DNA에도 영향을 미처 불안감을 느끼고 쉽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태아 프로그래밍’은 우리가 말하는 ‘태교’이다. 이렇게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태아 프로그래밍’을 통해 태교의 과학적 근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박윤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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