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른하늘에 날벼락

2017-10-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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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컨트리 뮤직 들으며 주말을 즐기던 군중 위로 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지난 1일 밤 라스베가스에서 야외공연으로 진행되던 ‘루트 91 하비스트’ 음악 축제장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59명이 목숨을 잃고 527명이 부상했다. 대부분 휴가 겸해서 라스베가스를 찾았을 청중들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하다못해 따귀 한 대를 맞아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데, 원한 산 일은커녕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무차별 총탄세례를 받는 사건이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학교, 영화관, 교회, 나이트클럽, 정부기관 등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기난사 사건이 툭하면 일어난다.

사건이 너무 잦다 보니 10년 전 엄청난 충격이었던 조승희 사건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정도이다. 2007년 4월 버지니아텍 캠퍼스에서 한인 1.5세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 32명이 절명한 사건은 미국사회는 물론 한인사회에 특히 충격이 컸다.


이후 총기난사 사건이 잊힐만하면 터지는 데다, 6살짜리 어린아이들 20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 그리고 49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사건 등 더 참혹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조승희 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처구니없이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피해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말이다. 피해자들이 지은 죄라면 운 나쁘게도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미국에 사는 누구도 이제는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게 되었다. 3억 정의 총기가 나도는 나라이니 언제 어디서 어떤 미치광이가 또 총을 쏴댈지 알 수가 없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를 총기 난사범 무서워서 극장에 안 갈수도, 학교에 안 갈수도, 음악회에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 라스베가스 사건은 하늘에서 총탄이 쏟아졌다는 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눈앞에 범인이 보여야 몸을 피할 수라도 있는데, 고층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향해 총을 쏘아대면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이다.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LA 다운타운 길거리에서, 샤핑몰 주차장에서, 야외 음악당에서 …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한인들도 걱정을 한다.

그런가 하면 지하철이 주 교통수단인 뉴욕에서는 지하철 타기가 무섭다는 반응들이다. 지하철은 한번 타면 도망갈 데가 없으니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면 거기서 끝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더 이상 100% 안전지대는 없다.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하겠다. 첫째,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것. 그러니 만약의 사태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가능하면 도망가라, 숨어라, 피할 수 없다면 싸우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둘째, 총기난사에 직면할 확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확률이라는 것. 일상생활 중 부딪힐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교통사고 당할 확률보다 훨씬 낮다. 이런 낮은 가능성 때문에 즐겁게 살아야 할 삶이 위축될 이유는 없다. 담담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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