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사랑의 척도

2017-09-23 (토) 05:18:26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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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사랑의 척도는 무엇으로 재야 하나? 사랑의 깊이를 나타낼 수 있는 계기가 없을까? 사랑하는 만큼의 양을 나타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너무도 많은 혼란과 비극에 빠질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그 누구네보다도 자기네 사랑이 제일 플라토닉하고 열정적이며 값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비윤리적이라 해도 그들에겐 나름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와 핑계가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유치한 소꿉놀이 하는 어린애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한다고, 죽으면 따라 죽겠다 하며, 지저귀는 새 소리도 피어나는 꽃도 온통 그로 인해 빛나는 것이라고 미사여구를 늘어 놓지만 아직까지 사랑하는 사람 죽었다고 따라 죽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또 사랑은 얼마나 계산적인지 그토록 사랑한 사람도 그 사람 마음이나 행동 변화에 따라 금방 같이 변해 미워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뿐인가, 현재 진행형 사랑이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이니 사랑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는 계기를 마주 달고 있다면 얼마나 웃지 못할 일이 생길까? 젊은이들의 사랑은 이렇게 변화무쌍하다지만 초로에 접어든 노인층들은 평행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거쳐 서산 마루에 걸린 저녁 해같이 그들의 인생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기에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 불쌍해 보일 수밖에...

얼마전 노 부부의 동반자살 뉴스를 보았다. 할머니의 오랜 투병, 돌이킬 수 없는 병세 악화,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죽음을 예견했고, 그나마 병석에서라도 같이 숨을 쉴 수 있는 할머니가 없는 빈 공간을 생각할 수 없어 죽음을 택했다는것이다. 물론 간병에 지친 할아버지가 힘겨웁기도 했겠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목숨도 예견했겠지만, 요새 젊은이들과는 다른 사랑을 우리는 말없이도 알 것 같다.

혀 밑에 넣으면 체온에 따라 올라가는 체온계처럼 사랑의 척도를 잴 수 있는 온도계를 기대하지 말자. 비 온 뒤의 오색 무지개처럼 선명하게 아름다운 그 허망함을 무엇으로 잴 수 있겠는가.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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