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재해는 ‘자연’ 재해인가

2017-09-23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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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조상들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때 무턱대고 베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에게 먼저 절을 한 후 “도끼 들어가요” 하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나무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는 절차였다. 산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 나무/자연의 영역, 그 땅을 침범하는 데 대한 죄스러움이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자연을 경외하는 의식으로부터, 자연이 삶에 일상적으로 섞여드는 환경으로부터 우리는 아주 멀리 와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며 거리를 살펴보았다. 콘크리트 빌딩들과 아스팔트 도로, 도로변에 장식용으로 심어진 나무들. 거기 자연은 없었다. 19세기 후반 LA에 철도가 들어오고, 유전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은 밀려나고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1900년 당시 10만 갓 넘었던 LA 인구는 현재 400만 명에 달한다. 위대한 개발의 세기를 통과한 결과이다.


닥치는 대로 삼림을 베고, 산을 깎고, 습지를 메워 도시를 만드는 개발 붐이 20세기 내내 일어났다. 자연은 필요에 따라 정복하고 목적에 따라 이용될 뿐이었다. 그 후유증이 21세기 들어서며 확연해지고 있다. 천재지변이 점점 강하게 점점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한달 자연재해란 어떤 것인가 집중교육을 받은 느낌이다. 8월 말 허리케인 하비를 시작으로 재난의 손님들이 줄줄이 찾아들었다. 하비가 초강력 폭우를 몰고와 휴스턴을 수중도시로 만들더니, 어마가 카리브 해안과 플로리다를 습격하고, 카티아가 멕시코 동부를 공격했다. 이어 호제가 미 동부 해안을 살짝 빗겨 나가서 마음을 놓으려 하던 때 이번에는 초강력 마리아가 카리브 일대를 강타했다.

허리케인 어마로 1차 피해를 입었던 푸에르토리코는 뒤이은 마리아로 완전 파손·파산 상태이다. 전기시설이 절단 나서 350만 인구 전체가 전기 없이 살고 있는데, 이를 복구하려면 최대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참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재해는 하늘에서만 내리친 게 아니었다. 땅 밑에서도 솟구쳤다. 지난 7일 규모 8.1의 강진이 발생했던 멕시코에서 19일 또다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9월19일은 1985년 거의 1만 명의 희생자를 낸 대지진 추모의 날이어서 멕시코 국민들의 충격은 대단했다.

7일 지진이 멕시코 남부 태평양 해저에서 발생해 피해가 적었던 반면 19일 지진의 진앙은 인구밀도가 높은 멕시코시티 인근이어서 피해가 엄청나다. 초등학교가 폭삭 무너지고, 빌딩들이 와르르 내려앉아 철조 구조물과 전선 등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벽돌과 콘크리트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바뀌었다. 그 사이 사이 갇혀 있을 사람들을 구조해내느라 멕시코 시민들은 혈안이 되어 있지만, 시신들은 날로 늘고 있다.

그리고 그 즈음 캘리포니아, 몬태나 그리고 북서부 태평양 연안 지역은 기록적 산불로 산야가 불타고 있었다. 지난 수년 극심한 가뭄 피해를 입은 끝이었다.

허리케인, 홍수, 지진, 산불 … 모두 자연재해이다. 하지만 ‘100% 자연’ 재해일까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재해를 부추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 자연을 너무 함부로 훼손한 대가이다.


홍수가 났다 하면 대홍수가 되는 미시시피 강 연안, 허리케인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뉴올리언스와 플로리다 남단 등지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던 습지대였다는 사실이다. 바다와 강에 면해 이용가치 높은 땅을 ‘왜 방치하는 가, 개발하자’ 해서 도시로 만들고, 사탕수수 농장으로 만들고, 해안 휴양지로 만든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문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습지대, 늪지대가 사실은 홍수와 허리케인 피해를 막아주는 천연 완충지대였다는 것이다. 폭우로 범람하는 물을 빨아들이던 거대한 스폰지가 사라지자 홍수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 몫이 되었다.

허리케인은 기후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이다. 허리케인이 강력해지는 것은 바닷물의 온도와 상관이 있다. 해수 온도가 섭씨 1도 상승할 때마다 대기 중 수분 함량은 7% 늘어난다. 수온이 높아 습기를 잔뜩 머금은 기류가 형성되면서 허리케인이 발생한다. 올해 대서양의 수면 온도는 특별히 높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상이변의 원인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열을 가둔다는 사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온난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후손들의 보금자리,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각자 자기 몫의 책무가 있다.

자연에는 아직 인간이 알지 못하는 많은 비밀이 있다. 자연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자연을 해치면 그 해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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