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주’ 를 노려라

2017-09-12 (화) 12:00:00
크게 작게
‘북한 주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려지나. “몹시 굶주렸다. 피골이 상접하다. 만성피로증세에 중증의 불안증세가 겹친 탓인지 눈치만 본다. 그리고….”

과히 틀리지 않은 답이다. 전 세계 최악의 폭정체제가 북한의 수령유일주의 체제다. 2대에 걸친 ‘선군(先軍)정책’과 함께 핵과 미사일개발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 결과로 영양부족 상태의 사람이 북한 전체 주민의 4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 북한에 ‘신인류’가 탄생했다. 아우디 등 고급 수입차를 굴린다. 온 몸은 명품으로 휘감았다. 고급 와인에 스테이크를 즐긴다. 그들이 사는 곳은 ‘평해튼‘(Pyonghattan)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누구인가. 북한판 ‘태자당’으로 불리는 ‘봉화조’ 사람들, 그러니까 북한 최고위 집권층의 자제들인가. 이들도 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을 ‘신인류’라고 부를 수는 없다. 공산당 간부 자식들의 호의호식에, 사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 ‘신인류’는 ‘돈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돈의 주인’이란 뜻으로 북한 내 일종의 신흥 부유층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의 부유층은 북송(北送) 재일동포와 화교들이었다. 일본으로부터의 송금 덕분에 현금 자산이 두둑했던 재일동포들과 이들로부터 사들인 일제 물건들을 중국에 되판 접경 지역의 화교들이 전통적으로 부를 축적한 계층이었다.

1990년대 고난의 시기를 겪은 후 북한에 장마당이 등장하면서부터 장사로 돈을 번 토종 부유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북한판 자본주의의 첨병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이들 ‘돈주’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원자재와 에너지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국영기업들이 많아지자 국영기업에 돈을 대고 놀고 있는 설비를 활용해 생필품을 만들어 장마당에 팔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 ‘돈주’들이 그렇다. 장마당 숫자가 북한 전역에 400개 이상 늘어나면서 북한 경제를 쥐었다 폈다 할 정도로 그 세가 막강해졌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최대 미스터리는 잇단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계속 호전되어온 것이다. 북한 경제는 2011년부터 매년 1% 수준의 성장세를 보여 왔고 지난해에는 5%의 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의 니콜러스 에버스타트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당국의 노력이 아닌, ‘돈주’로 불리는 신흥 자산계급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에 따르면 현재 북한 경제는 정부가 아닌 ‘돈주’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돈주’들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특히 6차 핵실험과 함께. 북한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경제제재는 바로 이들 ‘돈주’들을 타깃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이란 진단이 나오면서다.

금융에서, 유통, 건설, 서비스업까지 장악한 이 ‘돈주’들의 숨통을 바짝 죈다. 그렇게 되면 먼저 동요하는 것은 이들 ‘돈주’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다. 그 결과로 김정은 체제는 안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