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엄마 냄새

2017-09-09 (토) 05:17:35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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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서 엄마 살 냄새가 나는 거 같애.”

93세 연세로 저 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나는가 보다. 우리는 서로 엄마 냄새를 찾으려 이 얘기 저 얘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은 눈앞에 사물이 확실할 때 판단하고 귀는 뭔가 소리가 나야 들을 수 있지만 코는 바람에 실려오는 먼 데 것도 맡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향긋한 라일락 냄새나 그윽하고 달콤한 장미향, 비릿한 바다 냄새, 숲 속의 싱그러운 냄새 등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냄새도 있지만 미국인들은 베이글 구운 옆에 커피 향을, 한국인들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숭늉 냄새도 좋아하겠지. 하지만 요새 아이들은 피자 냄새를 더 좋아하리라.

그러나 민족과 나라가 달라도 누구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엄마 냄새! 엄마에게선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냄새가 있다.

내 엄마 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살 냄새. 그 냄새는 세상에 나와 처음 맡은 냄새여서인지, 그 품안에 안겨 자란 익숙함 때문인지 누구나 제일 좋아하고 그리워지는 냄새가 아닐까. 내 아들은, 내 손주는, 어른이 되고 머리칼이 흰 노인이 되어도 이렇게 가슴 뭉클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리운 엄마 냄새를 그리워하려나.

아들이 중학교 3학년때, 그 당시 백인들만 사는 보스톤 하이스쿨 한인 학생 2명 뿐인(그나마 한국 말을 못하는) 곳에 혼자 놓아 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때부터 내 집밥을 먹일 수 없게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외로웠을 그는 씩씩하게 현실에 적응했고 웬만한 음식은 나보다도 잘하게 돠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향수의 음식이 없는 거 같다. 하기야 이젠 양식이든 한식이든 척척 잘 해내는 제 아내가 있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한 두 가지쯤은 엄마음식으로 남아있길 바래보는 건 지나친 욕심이리라.

엄마는 고집도 세졌고 성격도 변한 것 같다는 아들 말에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님을 느낀다. 낯설고 물설은, 모든 것이 서툰 이곳에서 피해망상증 환자같이 내가 옳다고만 우기고 살아온 건 아닐까.

엄마로서의 푸근함은 다 벗어 버리고 생존경쟁에서 허우적대는 억센 여자로 아들에게 기억되면 어쩌나. 훗날 제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할머니의 살 냄새가 그립다고 눈시울이 뜨거워 얘기할 때가 있을까. 이렇게 내가 내 엄마 살 냄새가 그립듯이...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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