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면서 2001년 9월11일, 월드트레이드센터(WTC) 테러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날의 악몽 같은 장면을 지금도 상흔처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테러 공포를 느낀다.
폭삭 주저앉은 그 자리에 2014년에 완공된 국립 9.11 기념관(The National 9.11 Memorial Museum at the World Trade Center)을 찾았다. 그 끔찍했던 광경이 되살아나는 게 두려워, 전 세계에서 오는 뉴욕 방문객들의 필수적 명소가 된 이 곳을 나는 이제야 찾았다.
테러 당시 WTC 건물들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한 5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총 2,983명이 희생됐다. 1993년 2월26일에 일어난 그 지하 주차장 폭파사건의 희생자를 포함해,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이 기념관은 밝게 웃으며 찍은 고인들의 생전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각자 많은 사연을 안은 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끓는 애도 속에 그들은 우릴 바라본다.
육중한 철 기둥도 엿가락처럼 휜 엄청난 폭파 속에서 사람은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여기 저기 전시된 건물의 처참한 잔해들, 문드러지듯 파손된 마지막 탈출 계단, 테러 당한 비행기속의 승객들, 승무원들을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여러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퀼트들… 전시장엔 참혹했던 당시의 잔해와 희생자들을 기리는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리고 소방차 엔진 3가 상처투성이로 전시되어 당시의 기막힌 상황을 보여준다. 당일 사고현장 부근에 있던 이 소방차엔 전날 임무를 마친 11명의 소방관이 타고 있었다. 급박한 구조 요청에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작업 중 북쪽타워의 35층에서 전원이 산화했다고 한다. 가슴이 얼얼해온다. 임무에 너무나 충실했던 용감한 이들에게 깊은 존경으로 애도를 표한다.
왜 인류는 잔인한 행위를 멈추지 않는가! 종교 간의 심한 갈등, 정치이념의 극심한 대치, 자기 국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는 인류사회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항상 전쟁상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그라운드제로 근처에서 일하던 현장 일꾼들이 이 나무를 발견했을 때 가지가 불에 타고 뜨거운 재를 온통 뒤집어쓰고 신음하고 있었다. 수목의사들,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이 나무 살리기에 매달렸다.
다른데 옮겨진 나무는 정성어린 치료와 보살핌에 보답하듯 살아났다. 생명력을 회복하고 새 가지와 새 잎을 돋우며, 기념관 밖, 원래 폭파된 건물자리에 만든 큰 풀 옆에 다시 옮겨져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나무(The Survivor Tree)’라는 푯말을 달고 서 있다.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의 사랑과 감탄을 받으며….
나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외쳤다. “씩씩한 나무야! 살아나서 정말 고맙고 축하한다!”
우리도 이 나무처럼 인생 여정의 온갖 역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하게 뚫고 살아남아 우리의 공동체, 사회, 나아가 모든 인류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삶을 살아서 궁극적으로 평화에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용케 잘 살아남은 강인한 나무야, 내년 봄 싱싱한 생명력을 뿜으며 온 몸으로 하얀 꽃을 가득 피울 때 다시 널 보러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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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애/ 법정통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