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퇴 후의 삶

2017-09-09 (토) 12:00:00 최수잔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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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것을 심장의 일부분을 절단하는 것처럼 애석해하던 남편이 은퇴를 했다. 일하던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기 하루 전, 식당을 가득 채운 동료들과 보스가 모인 환송파티에서 남편은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긴 세월 함께 일하며 힘들 때 격려해주고, 긴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직장 동료들은 무척 섭섭해 했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보스는 좀 쉬다가 혹시 마음이 변하면 파트타임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했다.


늘 그의 일을 보아오던 상관은 “열심히, 희생적으로 30년을 함께 일했던 존이 이제 은퇴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한편으론 아주 섭섭하다”는 이메일을 보내서 은퇴한 옛 동료들까지 합석하는 파티를 열어주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살다 보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고…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에겐 잊혀지고 언젠가는 영원히 소멸되는 인연 속에서 좋은 인연이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쓴 맛, 단 맛이 다 녹아있어 습관화 되어있는 일을 놓아버리는 아쉬움보다 좀 더 자신의 꿈을 개발하지 못한 것, 젊은 시절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등으로 남편의 잠 못 드는 밤은 이어졌다.

은퇴는 인생에서 종착역이 아니라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눈가 주름처럼 겉모습은 구겨지고 스스로 삶의 가치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말처럼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늙음이라는 자연현상 앞에서 젊은 시절만큼의 일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은퇴는 살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와 지식을 총 망라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에게나 지금이 황금기이다. 은퇴 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내일을 보장받은 건 아니니까 오늘이 우리 생애에서 가장 젊은 때이다. 곁에 있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은 인생의 노을을 더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다.

은퇴 후의 계획에는 인생의 의미와 재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은퇴는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흥미있게 펼쳐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이 생각하는 참인생의 길을 따라 행동하되 목적을 향해 부지런히 새 일을 하면서 이루어내는 성취와 결실에서 만족감이 생긴다.

남은 인생이 가정은 물론 이웃과 화목하면서 여유 있고 교양 있는 인품과 함께 존경받는 삶으로 이어진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리라 본다.

<최수잔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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