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제주도 푸른밤

2017-09-07 (목) 04:03:34 박윤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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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사진찍기 구경하며~’

그룹 들국화의 멤버인 최성원씨가 작곡한 이 ‘제주도 푸른밤’이란 곡은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몇 일 뒤엔 유명 걸그룹 멤버이며 솔로활동을 하는 여가수가 또 이 곡을 리메이크해 발표한다는데 가사도 현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친척언니가 살고 있어 어릴 적부터 제주도에 자주 오갔기에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 떠올라 혼자 사색에 잠기곤 한다. 25여년 전 처음 제주에 가기 위해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하늘을 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설레며 비행기 창가에 앉아 꼼작도 하지 않고 밖을 내다보았었다.


그 이후로는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일 때면 노랫가사처럼 얽매이기 싫어 휘리릭~ 다녀가곤 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오랜만에 찾은 제주는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요즘은 그나마 중국관광객이 뜸하다고 하는데도 내가 느끼기엔 중국관광객이 많았고 곳곳이 차이나타운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때 잠깐 천연염색을 배웠던 선생님께서 제주에 내려와 계신다 하여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10년 전 제주로 이주해 올 때만 해도 글쟁이부터 그림쟁이, 악기쟁이 등등 예술가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작품 활동을 하기 좋았는데, 어느 순간 유명 연예인이 살면서 제주의 색깔도 잃은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연예인들의 제주 거주가 늘어나면서 일반인들도 제주에 단기로 살아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고, 대기업 프렌차이즈 카페와 레스토랑도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리워 한 제주는 내 추억 속의 제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곳들이 개발되고 발전됐다고 하지만 나는 왜 제주도만의 색깔을 잃은 것 같고 후퇴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현실이 변하는 만큼 노랫가사도 변해야 한다면서 정작 나는 과거에 머물러 추억만 되뇌이고 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현실에 맞게 변해가되 내 색깔은 잃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그렇게 내가 있는 곳에서 적응해 살아가면 좋겠다는 삶의 깨달음이 순간 들었다.

<박윤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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