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정치의 부메랑
2017-08-31 (목) 12:00:00
정치인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논리가 상황에 따라 교묘하게 바뀌는 일이 너무 잦기 때문이다. 상대를 극렬히 비판했던 이슈가 자신의 일이 되면 궤변과 강변으로 옹호하고 합리화하려 든다. 대개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요즘 들어 사람들 입에 부쩍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자신과 남을 이중 잣대로 재단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한 촌철살인의 유행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장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 어느 정도의 합리적 해명이나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에서는 민망해 하는 표정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내로남불’은 이제 정치권의 ‘뉴 노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타당한 이유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 보면 이런 자가당착에 자주 빠지게 된다. 정치가 상대에 대한 존중과 타협의 정신을 상실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일상이 돼 버렸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 상대의 정책과 입장은 무조건 폄하하고 반대하는 게 정치권 풍경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제의 발언과 입장이 오늘은 정치적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허리케인 ‘하비’로 초토화 된 텍사스 출신 공화당 연방의원들의 처지가 지금 꼭 그렇다. 하비가 투하한 ‘물 폭탄’으로 10만 채 넘는 주택들이 침수됐으며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정확한 추계가 힘들 정도의 천문학적 액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012년 뉴욕과 뉴저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샌디’ 피해복구를 위해 연방의회가 논의했던 505억달러 규모의 구호법안에 텍사스 출신 공화당 의원들 24명 가운데 23명이 반대표를 던진 사실이 조명되면서 정부 지원이 절실한 텍사스 정치인들은 머쓱한 입장이 됐다.
당시 존 컬버슨 하원의원을 제외한 23명의 텍사스 출신 의원들 모두가 이 법안을 반대했다. 이유는 “재해복구와 관련 없는 지출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반대에 가장 앞장 선 사람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그는 “3분의 2가 쓸데없는 지출”이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그렇게 댔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에 ‘정치적 심술’을 부린 것임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텍사스를 위해 연방정부가 조속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당연히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샌디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뉴저지의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는 텍사스 의원들을 향해 “위선자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던 뉴욕의 피터 킹 하원의원은 “뉴욕을 버렸던 테드 크루즈와 달리 나는 텍사스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슬쩍 비꼬았다. 크루즈는 “정치적 공격은 나중에 하자”며 상황을 수습하려 하지만 곤혹스런 처지임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적 발언에는 책임이 따른다. 크루즈를 위시한 텍사스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들의 ‘내로남불’에 대해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내로남불’이 자초한 부메랑들이 마구 날아다니고, 인간의 비극과 고통 앞에서도 딴죽걸기를 우선하는 양극화된 정치에서는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