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 전쟁의 유산

2017-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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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부터 1865년까지 계속된 남북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이다. 이 기간 동안 북군 사망자 35만, 남군 사망자 29만 등 최소 62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독립 전쟁에서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 걸프전, 이라크 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처음 전쟁이 났을 때 전문가들은 북쪽이 단시일내 승리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34개 주 가운데 23개 주가 북군에 속했고 남부군에 가담한 주는 11개에 불과했다. 인구도 북쪽이 두배, 군대 병력도 2배인데다 군수 공장을 비롯한 주요 산업 시설은 대부분 북쪽에 몰려 있었다.


거기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미합중국에서 떨어져 나온 남부 연합국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로부터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남부는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북군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쟁이 오래 계속된 이유는 뭘까.

우선 남부는 북쪽으로 쳐들어갈 필요 없이 자기 땅을 지키기만 하면 됐다. 북쪽까지 모두 점령해 미국 전체를 다스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가 유지되고 있는 남쪽 지역만으로 딴 살림을 차리겠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북군은 반란을 일으킨 남부 연합국으로 군대를 보내 남부 연합 지도자들을 모두 잡아들여야 했다. 자기 고향을 지키겠다는 쪽이 타향을 침공하는 쪽보다 전투 의지가 강했으리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남부의 무인 정신이다. 남부의 대토지 소유주들은 옛날 유럽의 귀족이 그랬던 것처럼 신사와 지도자의 조건으로 전투 능력을 중요시 했다. 이런 남부의 무인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 리라는 사람이다. 웨스트포인트 군사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미 육군 장교로 32년간 복무하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1861년 버지니아가 미 연방을 탈퇴해 남부 연합국에 가담하자 개인적으로 노예제를 반대했음에도 자신의 고향을 배신할 수 없다며 남부를 택해 결국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다. 남부군이 병력과 물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북 전쟁 4년 동안 북군과 대등한 전투를 벌인 것은 상당 부분 그의 공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그를 비롯한 남부군 지도자들의 동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12일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와 이에 반대하는 시위자 간의 충돌로 백인 여성이 사망한 사건도 그 계기는 이 도시에 있는 로버트 리 동상 철거 문제였다. 이 곳 시의회가 노예제를 지지한 남부군 총사령관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의결하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이를 막아달라는 소송을 연방 법원에 제기했고 법원이 사건을 심리하는 도중 이 사단이 난 것이다.

로버트 리를 비롯한 남부군 지도자들의 동상은 미국 각지에 수 천개가 있다. 이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백인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는 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모두 지울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독일은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를 없애지 않고 기념관으로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세를 교육하는데 쓰고 있다. 남부군 지도자 동상을 남겨놓더라도 이들이 입으로는 자유를 떠들면서 어떻게 흑인 노예들을 착취하고 박해했는지 모든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쓰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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