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방인숙의 허드슨강변 기차여행과 하우동굴의 여행수필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여행에서도 유효하겠다. 흔히들 ‘관광’하면 거주지주변의 빼어난 곳도 다 못 본채, 일차적으로 멀리 혹은 해외로 눈을 돌리니까. 나도 그래왔던 편이라, 이번엔 팀원 열 명과 Hudson Valley 기차여행과 Howe수중동굴을 행선지로 정했다.
우린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포킵시(Poughkeepsie)가는 기차에 올랐다. 베어마운틴 산행 가는 길에, 팰리세이즈 파크웨이에서 잠시 멈춰 전망할 때면, 멀리 강 건너로 기차가 보이곤 했었다. 허드슨 강에 바짝 안겨 달리던 그 강변기차가 내겐 ‘꿈의 기차’였다. 희망사항이 그 기차를 한 번 타보는 거였지만, 늘 벼르기만 해오던 터라 자못 감개가 무량하다.
강 풍경을 즐기기 위해 왼쪽 창가만 찾다보니 우리 팀도 두 칸으로 분산됐다. 앞 칸으로 가려는데 문을 당겨도, 앞, 옆으로 밀어도 요지부동이다. 문 앞에 앉은 남자가 버튼을 누르라고 일러줘서야, 문에 Press Button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고정관념대로 동그란 버튼을 찾으니 없다. 다시 잘 살피니 구별된 색깔의 네모진 부분에 Press라고 쓰여 있다. 글자위에 손을 대니 문이 쓱 열린다. “열려라 참깨!” 식으로 알고 나면 너무 간단하다. 기차문도 세대교체로 디지털화한 걸 모르고 구식만 고집했으니, 20세기 사람이다 싶어 한심하다. 그래도 드나드는 승객들을 눈여겨보니 반 정도가 나랑 판박이라 덜 뻘쭘하다.
용커스를 지나 Glen Wood에 이르니, 줄기차게 기차를 따라오는 허드슨 강의 실체가 점차 드러난다. 강 건너편의 짙푸른 숲과 강을 감싸듯 품어주는 주상절리의 절경은 보너스다. 차로 건널 때마다 곧장 바다로 돌진할 것만 같던 길고도 긴 태판지 브리지다. 기차로 건너니 훨씬 낭만적인 기분이 들고 운치가 있다. 원래 강, 다리, 기차는 환상의 조합이니까.
Ossining이란 데에 이르자 점점 거대해지던 강줄기의 폭이 바다라 입이 딱 벌어진다. 8년 전, 런던의 템즈강이나 파리의 세느강을 보곤 상상이하의 아담사이즈에 실망했었다. 한강이 얼마나 크고 잘 생겼는지 알게 된 계기였다. 물론 한강변의 급조된 아파트 숲 배경으론, 두 강유역의 깊은 역사의 무게와 멋이 실린 고색창연한 건축물들과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된다. 허나 도심을 통과하는 강의 스케일 면에선 한강이 더 유장한 건 사실이니까.
허드슨강(East River)도 맨해튼을 삥 돌아 흐르는 폭만 보곤 역시 한강이 크다고 여겼다. 그랬는데 막상 허드슨강의 원류를 접하니 역시 큰 대륙의 강답게 엄청 거대하다. 한강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쯤에선 이만하려나? 여하간 허드슨강의 재발견임엔 틀림이 없다.
정차하는 역의 마을들이 하나같이 고즈넉하고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역마다 하차해 살펴보고 싶은 욕구에 발차하는 매순간마다 아쉬운 마음뿐이다. Cotlandt역 유역은 늪지가 제법 많고 주황빛원추리군락지도 있다. 필경 생태학의 보고일거다 싶어 탐사라도 해보고 싶지만, 미련이 남을 턱없는 기차야 가차 없게 출발이다.
Peekskill역사 뒤 강변은 조각공원인 듯싶다. 강에 기대 저렇게 아름다운 풍광만 보는 조각품들은 참 행복하겠다. 덩달아 이런 강변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득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가 머릿속에서 읊조려진다. “엄마야 누나야/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좋은 시는 입력돼 있다가 이렇게 어느 때든 자연스레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안 잊어져 저절로 암송하게 된다.
Garrison과 Cold Spring을 지나 멋지고 긴 다리를 건넌다. 바로 Breakneck Bridge라 감회가 남다르다. 어언 십여 년 전 얘기다. 뜨거운 여름날이었는데 지인 세 명과 브레이크넥 코스로 베어마운틴에 올랐다. 그 코스가 나무그늘도 없는 바위투성이로 암벽등산가들의 훈련장소로 ‘딱’일 험준한 트레일 인걸 전연 예상 못했다. 그냥 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가, 위기감까지 들어 왜 이름이 브레이크넥 인지만 톡톡히 실감했었다.
땡볕에 바싹 달궈진 깎아지른 바위들을 엉금엉금 네발로 기다시피해서 반 정도쯤 올랐을까. 힘이 소진돼 위를 보니, 가파른 바위들의 끝없는 행진계속이다. 더는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그렇다고 도로 내려가자니 그 또한 까마득했다. 너무 덥고 탈진돼서 허물어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먼 아래로 펼쳐진 허드슨 강줄기와 아름다운 브레이크넥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확 트여와 심호흡을 하는 순간, 아! 강가로 쭉 이어진 기찻길 위로 레고(Lego)장난감만한 기차가 가물가물 산 아래로 꼬부라지는 게 아닌가. 세상으로부터 완전 동떨어진, 외딴 작은 별의 몽환적인 동화마을 풍경이었다. 한순간에 나는 현실감각이 사라진 채, 시대를 넘어 어릴 적 피안의 세계로 돌아갔다. 시골에 살던 유년부터 유난히 기차를 흠모(欽慕)하던 나한테, 강변기차가 구원투수로 등장할 줄이야. 서서히 마음에 평온이 잦아들면서 저절로 몸과 마음이 힐링됐다. 잠시 후 고갈됐던 에너지에 기가 충전돼서 씩씩하게 등정을 끝냈었다.
‘지나간 것은 큰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는 푸쉬긴의 말처럼, 아스라해진 그날이 까무룩 그립다. 지금은 도저히 등반불가능일 코스이기에 더한가보다. 이 기차여행의 추억도 이다음엔 얼마나 큰 그리움으로 사무쳐올까. 아쉽게도 어느새 두 시간의 ‘꿈의 기차’여행이 끝났다.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알바니(Albany)근처 쇼하리 카운티(Schoharie County)에 있는 하우동굴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마을에 농장과 목장들뿐인 푸른 초장의 언덕에 별장마냥 건물 한 채만 덩그렇다. 동굴이 있는 낌새는 전연 안 느껴진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큰 기차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의 대합실분위기다.
동굴가이드의 인솔아래 15명이 대기실로 갔다. 하우씨의 실물인형이 세워져 있고, 초원에 소들이 있는 영상이 나온다. 왜 소들을 보여주지? 그 의문의 답은 가이드의 해설로 금방 나왔다. 어느 여름날, Mr Lester Howe가 보니, 몹시 더운데도 소들이 그늘을 안 찾고 어느 관목 숲 앞쪽에만 몰려 있더란다. 하도 이상해 주변을 탐색해보니 어느 구멍에서 찬바람이 나오더라나. 1842년, 하우동굴의 존재가 세상 밖으로 노출된 동기였다. 동굴발견의 일등공신이 소들이었다는 이야기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아닌 실화인 셈이다.
하우씨는 이웃이자 땅 주인인 Henry와 고래기금랜턴에만 의지해서 일 년 동안 1마일 반을 탐험했단다. 다음해엔 하우씨가 그 땅을 100불에 샀는데, 후에 투자가들이 떼로 몰려들었다나. 하우씨의 로또당첨 이상 가는 ‘대박행운’의 전말이다. 그 비화를 그림영상으로 보여주는데, 하우씨가 엄청나게 많은 돈다발을 받아 품에 안고 웃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하여간 거의 100년 전까진 동굴에 한줄기 빛도 길도 없어서, 사람들은 장화, 헬멧, 방수옷 차림에 램프를 들고, 좁은 공간을 기거나 물위를 걸으면서 탐사를 했단다. 1927년에야 길과 전깃불, 엘리베이터 공사를 시작해서, 1929년 일반에게 재공개한 후, 오늘에 이른 거였다.
가이드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156feet(16층 가량)지하로 갔다. 연중기온이 50도에서 52도, 습도가 70%에서 75%라더니 과연 적당히 습하고 약간 선선하다.
가이드가 굵은 기둥모양으로 탑처럼 솟아오른 석회석(Lime Stone)석순을 가리켰다. 직경4feet에다 높이가 무려 11feet인데, 이 동굴에서 제일 큰 Chinese Pagoda란다. 바닥에서 자라는 석순이나 천장에 달리는 종유석은 통상 100년에 One Cubic inch씩 자란다니 저 석순의 나이는 어마어마하겠다. 이 동굴의 나이가 600만년으로 추정된다니 그쯤 되려나? 섭섭한 점은 한국도 탑이 많은 나라인데 이름이 Korea Pagoda가 아닌 거다. 인구는 국력이고 국토가 힘인 현실이라 어쩔 수야 없겠지만...
암굴의 두 마녀(Two Witches of the Grottoes)다. 가이드가 짚어주는 바위단면곡선의 흐름이 흡사 사람의 옆얼굴인데, 턱쯤에 흐릿하니 또 하나의 얼굴형상이 잡힌다. 힐끗 봤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가이드 말대로 분명 코가 삐죽한 마녀의 얼굴이 둘이긴 하다.
The Pipe Organ이란 별명의 커다란 바위는 세로로 물결치듯 결들이 졌다. 석순과 종유석이 같이 자라 그렇게 된 거라나. 더해서 석회암으로 형성된 벽 위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바위천장인 동굴의 에코현상에 의해 공명하는 소리를 오르간의 연주라고 한다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기념품 삼아 종유석들을 떼어가곤 하는 바람에 생긴 구멍에서 자연적인 음악효과음이 파생되는 거란다. 여하간 석순과 종유석을 건드리거나 파손하는 건 현재진행형으로 자라고 있는 과정에 방해돼 절대금기다. 랄프 왈도 에머슨도 간파했다. ‘자연은 한 방울의 이슬 안에서도 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물며 숨어있던 동굴에서야...
인제 8분의 1마일은 비너스(Venus)호수에서 무동력 보트로 움직인다. 배 모양이나 크기가 디즈니월드에서 테마별로 지하에서 숱하게 타고 돌던 배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천연동굴호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공적인 지하수로였지만 말이다.
동굴보존상 모터 없이 가이드가 손으로 운항한다기에 카누의 노 젓듯이 손으로 물살을 헤치며 가는 줄로 짐작했다. 배를 타고나서야 가이드가 선 채로 동굴 벽이나 천장에 박아 놓은 철근을 잡고 몸의 힘으로 배를 미는 걸 알았다. 컴컴한데다 좁고 낮아 가이드는 머리조심이 필수였고 배는 또 제멋대로 벽에 부딪히곤 했다. 동굴뱃사공노릇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