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사업가의 기부

2017-08-21 (월) 이원창 / CA 뱅크 & 트러스트 윌셔센터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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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회장은 그 날도 감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고 왔다. 연말 파티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좀 후줄근해 보이는 차림이다. 돈도 많은 분이 왜 계속 같은 옷을 입고 다닐까? 괜히 궁금해진다.

수십년 사업을 해왔지만 작년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약 400명 트럭 운전기사 노조원들과 6년 협의 끝에 합의, 인건비 지출이 커진데다 모 선사의 셧다운으로 생긴 손실을 합치면 도합 1,000만 달러 수준의 추가지출이 있었지만, 다행히 트럭운송 비즈니스에서 그만큼 벌어 모두 다 막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 작년에 그는 한 사회봉사 재단에 25만 달러를 내놓았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후에 우연히 알게 되어 물으니 기부금을 100만 달러까지 채우겠다고 한다. 작년에는 사실 수익도 별로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의 사무실로 찾아간 건 북한문제를 연구하는 어느 학생 때문이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옥스포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으로 “북한의 숨은 혁명(North Korea‘s Hidden Revolution)”이란 책을 써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었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3년에 걸쳐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고, 그 자료를 토대로 북한붕괴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북한관계 연구 자금을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묵묵히 얘기를 듣던 그는 필요한 액수를 물어왔다. 2만 달러라고 대답했다가 절반만 도와도 괜찮겠다고 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그는 2만 달러를 두 달 후에 주겠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화요일, 우리가 속한 클럽에 그가 왔다. 그 학생의 안부를 묻더니 다음 금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금요일이 왔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들이 쉴새없이 지나가는 철길 옆 웨어 하우스, 이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조그만 서랍에서 낡은 체크북을 꺼내더니 액수를 적은 후 간단한 서신을 쓰고 봉투에 넣어 학생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녀가 지금 미얀마에 가서 두 주 후에 돌아오니 그 때 직접 주는 게 좋겠다고 권했지만 그는 한사코 그냥 전해만 달라고 했다.

좁은 층계를 지나 파킹장으로 내려갔다. 롱비치 햇살이 따갑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목적”이 있다. 서울 대에도 10만 달러 기부한 것을 우연히 위키피디아에서 읽었다. 기부는 오랫동안 해온 것 같은데 본인이 밝히지 않으니 도대체 얼마나 했는지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기부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큰돈을 내놓고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만한 목돈을 내놓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다못해 동창회에 조금 기부한 것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회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결국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북한연구를 돕기 위해 선뜻 거금을 내고, 한인사회를 넘어 주류사회를 위해서도 넉넉하게 기부하는 큰손. 사시사철 똑같은 양복을 입는, 자신에게는 검소한 사람이지만 사업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기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물러나 있으려는 그의 의지에 고개를 숙인다.

<이원창 / CA 뱅크 & 트러스트 윌셔센터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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