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의사 이야기

2017-08-12 (토) 강미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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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전혀 프로페셔널하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여느 의사와는 달리 그는 나의 말을 너무나 오래 들어 주었다.

두 번의 연이은 간단한 수술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실망감에 대한 이야기를 일말의 주저 없이 다 들어 주는 것이었다. 환자로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 15분이 전부일진데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게다가 자신의 사적인 경험도 늘어놓기 시작하는 그는 분명 프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이전 의사에게 실망을 한 터인지라, 유명 마취과 의사인 지인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그에게 수술을 맡기지 않고 발길을 돌렸을 것이었다. 내가 아는 의사들은, 적어도 프로페셔널들은 시간 사용에 매정하리만큼 철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느긋한 미소와 장난기 어린 표정, 그리고 느릿한 말투를 가진 그는 그저 친절한 이웃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그냥, 전혀 의사 같지 않았다.

어쨌든 수술은 진행되었고, 수술 후 그는 회복실에 있는 내게 들렀다. 수술 경과보고를 하려고 들른 것임에 분명한데 그는 병실의자에 털썩 주저 않더니 천천히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수술 보고 따위보다는 따뜻한 대화가 환자의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나 자신, 이 허술해 보이는 노의사의 따뜻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이 내게 어느 정도 치유의 효험을 발휘하였다는 착각에 빠졌다고 말해야 겠다. 어린 아이같은 그의 표정과 함께 말이다.

첫 만남 이후로 계절이 바뀌도록 늘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그, 낡아 빠진 87년형 포르쉐를 아직도 끌고 다니며 그것이 87년 단 한 해에만 제작된 모델임에 자랑스러워하는 그, 의료인의 삶은 고달프지만 의술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잘 도와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 말하는, 이 허술해 보이는 의사는 현재 뉴저지 섬트에 있는 오버룩 종합병원 내 산부인과의 지도교수이며 학과장인 닥터 알람이다.

그는 무료 수술 봉사를 위해 지상 최빈국인 아이티에 20여 차례 방문을 하였고. 여전히 후진국이며 낙후된 의료 시설을 가진 자기의 고국인 파키스탄에 전액 자비를 들여 종합병원을 설립한 분이다.

부유한 자신의 환자들이 많은 수표를 기부금으로 보내었으나 그것들을 아직도 현금화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모슬렘이다. 터번 같은 것은 쓰지 않지만 그리고 미국에 건너온 지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하루 다섯 번 모슬렘의 규율에 따라 기도한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을 한다. 수술을 하면서도 금식을 한다. 연세가 올해 70의 고령인데도 이 모든 규율을 철저히 지킨다. 왜 여전히 금식을 하느냐 물으니 대답이 곧 온다. “알잖아… 이라크 지역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우리는 정말 조금밖에, 조금밖에 모른다. 그에 관한 모든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옴은, 나 자신 고정관념과 선입견에서 자유롭기가 아직도 요원할 뿐임을 그저 깨닫는다. 나의 마지막 수술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강미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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