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세기들어 오랜 일본 식민지 생활을 겪었고, 세계 2차 대전 후 1945년에 해방이 되었으나 국가가 채 정립되기 전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따라서 앞선 서구 문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아시아 어느 국가 보다도 서구문화 상륙이 늦은 편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자국민을 위해AFKN 방송을 시작했다.
주로 뉴스와 미국의 각종 음악을 들려 주었다. 이 방송은 이후 한국의 신세대에 미국문화를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방송을 듣고 자라 온 세대들 즉 AFKN 마니아가 미국의 최신 유행음악을 한국의 젊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선구자가 되었다.
이들은 전문 음악 감상실로 진출하여 전문음악 DJ로 활동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필자를 비롯하여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지명길, 선성치, 선성윤 등이다.
1963년에 동아방송이 문화방송국에 이어 민영방송으로는 두 번째로 개국하여 당시로는 파격적인 음악프로인 ‘탑튠쇼’를 편성했다.
이 프로는 미국의 최신 히트 팝송을 들려주는 최초의 한국 방송 프로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AFKN을 통해 미국의 최신 유행 음악에 심취하자 동아방송 수뇌부는AFKN 청취자들을 동아방송으로 채널로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탑튠쇼 프로를 만들었다. 문제는 누가 이 프로를 진행하느냐 였다.
물론 당연히 아나운서실에서 맡는 거였다. 이 당시 방송국 구조는 대개 5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도부, 기술부, 총무부, 제작부 그리고 막강한 아나운서실이었다. 한국에서는 국영 방송인 KBS부터 민간 방송국까지 아나운서 외에 마이크를 잡은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마이크 앞에 자리 잡는 것은 아나운서 몫이었다.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음악 애호가들이 음악 감상실 DJ들이 진행하는 자유로운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어 전문 지식이 없는 아니운서들이 진행하는 단조로운 방식이 통할 지 알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 이미 내부적으로는 음악 감상실 DJ출신인 최동욱씨를 내정했지만 아나운서실의 반발을 고려하여 발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방송사의 혁명적인 결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가히 007작전에 버금가는 파란을 겪은 끝에 결국 최동욱씨로 결정하여 방송을 시작했다.
샹테이즈가 연주한 ‘파이프 라인’을 시그널 뮤직으로 시작한 이 프로는 첫 방송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젊은 애청자들은 이 방송을 듣기 위해 일찍 귀가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 되었다.
점점 자신감을 얻은 최동욱씨는 정통 아나운서들의 멘트에서 벗어나 애청자들을 친구처럼 느끼게 하는 멘트를 사용,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동아방송은 탑튠쇼 성공에 고무되어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애청자들이 직접 전화를 해 희망음악을 신청하면 바로 들려주는 한국 방송 사상 최초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동아 방송의 성공에 자극 받은 문화 방송도 음악 감상실의 DJ였던 이종환씨를 스카우트 하여 그 유명한 ‘한 밤의 음악 편지’를 편성, 동아방송의 탑튠 쇼와 경쟁하였다. 특히 밤 11시에 방송하는 ‘한 밤의 음악 편지’는 수도권에서만 청취가 가능했던 동아방송과는 달리, 전국적인 네트웍을 이용하여 더욱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탑튠 쇼가 시작된 1963년부터 1970년대는 한국 팝 방송의 르네상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 프로가 방송하기 전에는 레코드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누가 갖고 있다는 정보만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찾아가 함께 듣곤했다. 소위 ‘마누라는 빌려줄 수 있지만 레코드만은 안 될 말”이라는 무언의 조약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지금 시대에는 누구나 쉽게 방송에 나가 TV나 라디오 프로에 출연할 수 있지만 1960년대는 그 누구도 아나운서 성역인 마이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최동욱씨나 이종환씨가 마이크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장벽과 어려움이 있었으며 그 속에 많은 비화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얘기하자면 소설을 쓸만큼의 장대한 분량이다. 아무튼 ‘이지 리스닝’(듣기 편한 곡)계열의 음악에 익숙해 있던 라디오 청취자들에게는 앞서 말한 프로들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한국 팝송 초기의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팝에 대한 연재를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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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라디오 DJ 및 팝 컬럼니스트>